《사람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 》(1)

    사람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이 세상에 태여나 생을 이어가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최대의 관심사로 되는 운명문제.

    생은 귀중하다. 그래서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의 인생행로에 커다란 관심을 가지게 되며 한생을 보람차고 행복한 삶으로 가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의 답을 얻으려고 한다.

    사람의 운명문제가 비로소 오늘 우리 현대인들에게 와서야 제기된 문제는 아니다.

    아득한 옛날부터, 인류사회가 발생한 그때부터 사람들은 이렇게나 저렇게나 운명에 대하여 생각하여왔으며 자기 운명을 개척하려고 무진 애를 써왔다.

    고대에짚트인들은 태양의 신전을 만들어놓고 대대로 태양신에 막대한 제물을 바쳤으며 중앙아메리카의 마야족은 한번에 2만여명의 노예들의 심장을 도려놓고 태양신에 행운을 빌었다.

    인까족은 태양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살며 태양의 은혜를 더 많이입기 위해 광활한 옥토도 버리고 3 400m나 되는 안데스산정에 올라 《태양의 도시》를 건설하였다.

    이처럼 고대인들은 태양신을 믿고 그에 빌어 행운을 얻으려는것과 같이 그 어떤 신적인 존재에 자기 운명을 의탁하려고 하였다.

    그 과정에 생겨난 사람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는 또 얼마였으랴.

    고대그리스의 신화에는 《운명의 녀신》들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지고있다.

    올림프스산정의 높은곳 구름우에 지은 화려한 황금궁전에는 여러 신들과 함께 운명의 근엄한 녀신들이 살고있는데 사람의 운명은 물론 세상만물의 지배자인 제우스의 운명까지도 이들의 손에 쥐여져있다.

    클로트라는 녀신은 사람의 생명의 실을 꼬는데 그 실이 끊어지면 사람의 생애도 끝난다. 그런가 하면 라케시스라는 녀신은 사람의 일생을 점치는 제비를 뽑으며 아트로포스라는 녀신은 언니신들이 사람의 일생으로 정해놓은것을 긴 두루말이종이우에 적어넣는데 여기에 한번 적히면 모면할수 없다는것이다.

    고대로마의 철학자 세네카(B.C.3년-A.D.65년)는 《운명은 희망하는 자는 데리고 가며 희망하지 않는 자는 끌고간다》고 말했다.

    인류력사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세상만사도, 사람의 운명도 신적인 존재에 의하여 미리 주어졌고 사람은 그에 순종할수밖에 없다는 숙명론적관점의 포로가 되여 운명의 노예로 불쌍하게, 고달프게 살아왔던가.

    한편 신비주의적세계관과 숙명론을 반대하여나선 사람들도 있었다.

    이미 고대시기에 《투쟁은 만물의 아버지, 만물의 왕이다. 그것은 사람을 신으로 만들수 있으며 또 사람을 자유민으로 만들수 있으며 또 노예로 만들수 있다.》고 하면서 운명에 대한 신적교리를 반대하는 사상가들이 나타났으며 이러한 주장은 근세에 이르러 신과 종교적운명교리를 가장 무자비하게, 전투적으로 비판하면서 앙양되였다.

    사람의 운명이 사람밖의 그 어떤 신비로운 존재에 의하여 좌우된다는 숙명론은 맑스주의에 의하여 과학적으로 부정되고 타파되였다.

    그러나 신비주의와 숙명론의 부정으로써 사람의 운명문제가 완전히해결된것은 아니였으니 사람이 자기 운명을 개척해나갈수 있는 앞길은 여전히 묘연하기만 하였다.

    오랜 력사를 이어오면서 인류가 그토록 모색하고 바라던 사람의 운명문제는 마침내 위대한 주체사상에 의하여 그 정답을 얻게 되였다.

    주체사상은 인민대중이 세계와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등장한 새로운력사적시대의 요구를 반영하고 운명개척을 위한 인민대중의 풍부한 투쟁경험을 과학적으로 일반화한 사상으로서 사람의 운명문제에 직접적이고도 전면적인 해명을 주는것을 사명으로 하는 사람중심의 새로운 철학사상이다.

    주체사상은 사람의 본질적특성에 대한 과학적해명에 기초하여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자신이며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힘도 자기자신에게 있다는 귀중한 진리를 밝히고 그로부터 출발하여 사람들이 자기 운명을 참답게 개척해나가는데서 나서는 모든 문제들에 전면적이고도 가장 옳바른 해답을주고있다.

    주체사상이야말로 인간존중, 인간옹호의 최고정화이며 운명개척의 유일한 만능의 보검이다.

    누구를 물론하고 자기 운명에 무관심한 사람은 없으며 따라서 그가참된 삶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주체사상을 알아야 하고 그 진리를 따라야 할것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사람의 운명문제에 옳바른 해답을 주는 주체사상의 심원한 원리들에 대한 우리의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

    

    우리 이야기의 순서는?

    

    이야기에 앞서

    

    1. 운명의 수수께끼

    

    1) 운명의 《문》을 열며

    운명이란 무엇인가

    운명문제와 철학적세계관

    

    2) 운명문제해결의 력사를 더듬어

    악몽에서 깨여나기까지

    장엄한 해돋이

    

    2. 운명의 지배자, 개척자

    

    1)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

    자유는 목숨보다 귀중하다

    유일한 창조자

    자기 행동을 조종하는 인간

    사회가 주는 모습

    

    2) 운명의 주인은 사람자신이다

    운명개척의 근본원리

    세계의 통솔자

    세계를 자신을 위한것으로

    

    3) 운명에 대하는 주인된 자세

    가치평가의 기준

    《호박이 절로 굴러떨어질가》

    

    3. 인민대중과 운명개척

    

    1) 력사가 내세운 운명개척의 담당자

    《전지전능한 존재》

    최대의 행운, 최대의 불행

    자기를 알아야 강자가 된다

    《특허무기》

    

    2) 자주의 항로

    자주의 기슭을 향해

    왜 공상으로 되였는가

    

    3) 창조의 로정

    운명개척의 방식

    기적의 원천

    

    4) 운명개척의 조종간

    목적의식적으로

    세계를 움직이는 지레대

    

    4. 운명개척의 곧은 길

    

    1) 자주적대를 세워

    《헤그밀사사건》

    《작고도 큰 나라》

    《광명성1호》의 발사

    발칸전쟁의 교훈

    

    2) 창조냐, 교조냐

    삶과 투쟁의 좌우명

    좋은 약도 몸에 맞아야 보약

    

    3) 사상을 기본으로

    무엇이 선차냐

    심장에 불을 달라

    

    5. 빛나는 결실, 찬란한 미래

    

    1) 위대한 현실을 낳았다

    

    2) 21세기와 운명

    

    

    

    

    사람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1)

    

    1. 운명의 수수께끼

    이야기에 앞서 운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지난 시기에는 운명문제를 어떻게 론의하여왔는가를 이야기해보자. 이것은 운명에 대한 우리의 리해를 일치시키며 주체사상이 어떻게 되여 운명개척의 근본방도를 밝혀주는 사상으로 나오게 되였는가를 알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1) 운명의 《문》을 열며

    

    운명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누구나 한생을 산다.

    하기에 사람들은 자기의 생을 더없이 귀중히 여기고 사랑하며 생활을 잘 가꾸려고 왼심을 쓰고 열심히 노력도 한다.

    자기의 생에 대하여 무관심하거나 복된 생활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어데 있겠는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인간의 모든 인식활동과 실천활동의 근본목적은 인간의 운명을 개척하는데 있습니다.》

    물론 사람들가운데는 생에 대한 애착을 가지지 못하고 되는대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낡은 사회가 강요하는 불행과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지 못하여 절망에 빠지고 타락한데서 온것이지 결코 그들이 자기의 생을 귀중히 여기지않거나 행복한 생활을 바라지 않기때문인것은 아니다.

    한생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값있고 보람있게 살려고 하는것은 인간의 공통된 지향이며 본성적인 요구인것이다.

    그런데 인생은 순풍에 돛단 배처럼 바라는 곬으로만 가고 순탄하게만 흐르는것이 아니다.

    인생길에는 평탄한 길이 있는가 하면 시련과 난관의 언덕도 있고 행복이 있는가 하면 뜻밖의 불행과 재난도 있으며 성공의 기쁨이 있는 반면에 뼈저린 상실의 아픔과 죽음의 고비도 있다.

    15세기 조선의 대표적작가이고 학자였던 김시습(1435-1493)의 생애를 보라.

    어려서부터 시를 잘 지어 《신동》으로 소문났던 그의 앞날을 부모들과 주위사람들은 축복해주었으나 그의 인생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불행하게도 김시습은 15살잡히는 해에 자기를 사랑해주고 이끌어준 어머니를 잃었으며 1455년부터는 벼슬살이를 단념하고 일생동안 중의 차림으로 방랑생활을 하였다. 46살 나던 해에야 장가를 갔으나 가정생활에서도 결코 오래동안 행복하지 못했다. 그처럼 사랑하던 안해가 자식하나남기지 못하고 인차 죽은것이다. 김시습은 또다시 방랑의 길에 나서서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다가 한스러운 생을 마치였다.

    우리가 잘 아는 도이췰란드의 이름난 작곡가 베토벤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음악생애의 한창 시기에 그만 귀병을 앓아 마지막에는 청음기로도 듣지 못하고 자신의 의사도 글로만 전달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자기가 작곡한 교향곡의 연주조차 듣지 못하게 된것이 음악가인 그에게 얼마나 치명적이였던지 1802년 10월에는 자살을 결심하고 유서까지 썼었다고한다.

    그의 교향곡 5번 《운명》에는 이런 사연이 있다. 그가 생활이 매우 어려운 형편에서 교향곡을 완성하기 위하여사색에 사색을 거듭하던 어느날 빚을 받으러 찾아온 채권자가 밖에서 문을 탕탕 두드렸다고 한다. 그 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그의 마음은 더욱더 불안에 휩싸였다. 그 순간 그에게는 빚에 눌리여 허덕이는 수많은 사람들의 신음소리를 듣는듯한 예술적령감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는 기구한 운명에 처한 수많은 사람들의 심정을 담아 교향곡에 이런 제목을 달았다고 한다.

    이처럼 사람의 인생행로는 결코 순탄치 않다.

    그것은 마치 평탄하고 곧바르다가 산굽이에 부딪쳐 에돌기도 하고 때로는 넓어졌다가 좁아지기도 하고 올리막이 있는가 하면 내리막도 있는 길처럼 복잡다단하다.

    한생의 길은 복잡다단할뿐아니라 사람마다 서로 다르다. 세상에는 유족하게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난에 쪼들리면서 사는 사람이 있으며 행복한 생을 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행속에 한생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사회와 집단을 위하여 한생을 바치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자기 개인만을 위하여 한생을 살며 큰 뜻을 이루기 위한 투쟁속에서 사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순간의 리익과 물질적욕망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또한 사람들가운데는 장수자가 있는가 하면 단명인 사람도 있으며 제명을 다 사는 사람도 있고 비명에 죽는 사람도 있다. 참으로 인생이야말로 천태만상이다.

    인생은 한 피줄을 이은 형제간에도 다르고 나라와 민족, 계급과 계층에 따라, 사회제도에 따라 서로 구별된다.

    사람이 한생을 살아가는 과정에 생활에서 극적인 변화도 있을수 있다.

    노래 《알로하오에(그대여 안녕)》는 하와이왕국의 마지막 녀왕이였던 릴리워 칼라니가 지은 노래로써 우리들에게 널리 알려져있다.

    하와이왕국의 녀왕이였던 그는 나라를 미제에게 빼앗김으로써 하루아침에 나라를 잃고 망국노의 신세가 되였다. 그는 1898년 독립국이였던 하와이왕국을 그리워하면서 나라를 잃은 슬픔을 담아 노래를 지었다고 한다.

    독립국의 왕으로부터 식민지망국노의 처지로, 이런 경우를 두고 우리는 무엇이라고 하는가.

    이것이야말로 생에서의 극적인 전환이 아닐수 없다.

    생활에서의 전환은 이와 반대의 경우도 있다. 어제날의 노예가 장군으로, 머슴군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된 이야기도 있고 억압받고천대받던 사람들이 나라의 주인으로 된 사실도 있다.

    사람으로 태여나기는 다 같고 행복한 생활을 바라는것도 다 마찬가지인데 생의 길은 사람마다 다르고 한 사람에게서도 굴곡이 있고 돌변하기도 하는것만큼 사람들은 누구나 생의 길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인생행로가 바로 사람의 운명이다.

    사람의 운명에서 제기되는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들은 다음과 같은 두가지 문제 즉 살아존재하는가 마는가 하는 생사존망문제와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생활처지문제에 귀착된다. 그러므로 운명은 사람의 생사존망과 생활처지를 두고 이르는 말로 풀이할수 있다.

    이렇듯 운명문제는 사람들의 생사존망, 생활처지에 관한 문제이기에 사람들은 누구나 운명문제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며 그의 해결에 커다란 관심을 돌리게 된다.

    운명은 무엇에 의하여 규제되는가, 운명개척의 방도는 무엇인가, 이것은 인류의 발생과 함께 제기되고 모든 사람들이 그 해결을 바라는 수수께끼이다.

    

    운명문제와 철학적세계관

    

    망망대해에 뜬 배가 자기의 항로를 따라 곧바로 전진하려면 라침판과 등대가 있어야 하는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인생행로를 바로 걸어가려면 그 앞길을 밝혀주는 빛발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사람의 운명개척의 앞길을 밝혀주는 빛발은 무엇인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철학적세계관의 근본사명은 인간의 운명개척의 길을 밝혀주는데 있습니다.》

    사람의 운명개척의 앞길을 밝혀주는것은 철학적세계관이다.

    세계관은 전체로서의 세계에 대한 견해, 관점과 립장으로서 여기에는 종교적세계관과 철학적세계관이 있다. 종교적세계관이 환상적이고 전도된 세계관이라면 철학적세계관은 론리적으로 체계화된 세계관이다.

    사람들에게 운명개척의 앞길을 밝혀주는데 과학으로서의 철학적세계관의 본래의 사명이 있는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철학은 매우 리해하기 힘들고 인간생활과 거리가 먼 학문으로 생각하며 아는것이 많고 사색이 깊은 특정한 사람만이 철학적세계관을 가지는것으로 알고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누구에게서나 가장 큰 관심사는 운명문제인데 운명에 대하여 생각한다는것은 벌써 일정한 세계관을 가졌다는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언제나 철학적세계관의 높이에서 자기의 운명문제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는것이다.

    그러면 사람의 운명문제와 철학적세계관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하는것을 살펴보기로 하자.

    사람은 세계속에서 살며 세계와의 관계를 통하여 자기 운명을 개척해나간다. 세계를 떠나서는 사람의 그 어떤 삶이나 운명에 대하여 생각할수 없다. 세계는 사람의 삶의 터전이며 운명개척의 활무대이다.

    세계속에서 살며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사람의 활동은 기본적으로 두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세계를 이루는 사물현상들의 본질과 그 운동발전의 합법칙성을 파악하는 인식활동이며 다른 하나는 세계의 사물현상들을 자기의 요구에 맞게 변화시키는 개조활동이다.

    행복한 생활은 하늘에서 떨어지는것이 아니라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고 변혁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자연은 사람의 로동대상이며 모든 물질적재부의 항구적인 원천이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먹고 입고 쓰고 사는데 필요한 여러가지 물질적수단이 있어야 하는데 그 모든것을 자연으로부터 얻어내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자연은 저절로 사람에게 필요한 물질적재부를 제공하는것이 아니다.

    사람은 자연의 사물현상들을 자기의 요구에 맞게 개조하고 변형시켜야만 필요한 생활자료들을 얻을수 있다. 사람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수많은 물질적수단들은 모두 자연을 개조함으로써 이루어진것이다.

    쌀 한알, 못 하나라도 자연을 개조하는 로동이 아니고서는 생겨나지 않는다. 자연을 개조하는 로동이야말로 사람들이 생활수단을 얻어내고 행복한 물질생활을 보장하는 근본조건이다.

    사회는 자연과 함께 사람의 필수적인 생활환경을 이룬다. 사람은 사회적관계속에서만 생존하며 사회관계가 어떠한가 하는것은 사람들의 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단결과 협력, 평등과 호혜의 사회관계에서는 사람들이 자유와 행복을 누리게 되지만 대립과 불신, 착취와 억압의 사회관계에서는 사람들이불행과 고통을 당하지 않을수 없게 된다. 사회관계는 사람들이 맺는 보다 직접적이고 일상적인 관계로서 그것을 통하여 자연과의 관계가 이루어지고 그것에 의하여 물질생활도 좌우되는것만큼 사회적구속은 자연적구속에 비할바없이 더욱 가혹하고 참을수 없는것이다.

    사람들에게 자유와 행복을 주는 사회관계는 저절로 이루어지는것이아니다.

    사회가 계급으로 분렬된 사회에서는 낡은 사회관계를 고수보존하려는 세력이 있게 되며 반동세력의 집요하고 악착한 반항을 짓부셔버리는 투쟁을 통해서만 사회관계를 유리하게 변경시킬수 있다.

    사회관계를 개변하는 투쟁이 없이 사람들에게 행복을 안겨주는 사회가 이룩될수 있다고 생각하는것은 한갖 공상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를 개조하는 실천투쟁은 합리적인 사회관계를 이룩하여 자유롭고 행복한 생활을 누리기 위한 기본공정이다.

    이처럼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고 변혁하는 투쟁은 사람들의 운명개척의 필수불가결의 조건이며 근본방도라고 말할수 있다.

    사람들이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고 자기 운명을 개척하려면 자연과 사회에 대한 옳바른 인식이 필요하다. 자연과 사회의 모든 사물현상들은자기의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있으며 자기의 법칙에 따라 변화발전한다. 사물현상들이 가지고있는 특성과 변화발전의 합법칙성을 알아야만 그것을 자기의 지향과 요구에 맞게 개조하고 변혁해나갈수 있다.

    알아야 앞을 내다 볼수 있고 운명개척의 길을 찾을수 있다.

    사람은 자연과 사회에 대한 옳바른 인식 즉 진보적인 사상과 과학지식을 가지면 운명의 조종자로 되고 그것을 못가지면 운명의 노예가 된다. 지식은 광명이요, 무식은 암흑이라는 말은 바로 이런 뜻을 담고있는명구이다.

    인류력사의 전과정에서 사람들의 운명개척에서의 새로운 전진은 선진사상과 과학지식의 발전을 떠나서는 생각할수 없다.

    19세기 중엽까지 자본주의나라의 로동계급은 아무리 일을 하여도 가난과 고통속에서 살아야 하는것을 타고난 팔자로, 어쩔수 없는 운명으로 여기였다.

    이러한 때 로동계급의 수령인 맑스(1818-1883)는 자본주의사회의 경제관계를 깊이 연구한데 기초하여 자본주의사회에서의 착취의비밀을 밝혀냈다.

    맑스에 의하여 자본가들이 로동자의 로동력을 사가지고 로동자로부터 로동력의 가치이상의 가치 즉 잉여가치를 짜내고 그것을 수탈한다는것이 명백히 드러나게 되였다.

    맑스의 과학적학설에 의하여 로동계급은 자기들의 불행이 팔자탓이나 하느님의 계시에 의한것이 아니라 자본가계급의 착취와 그것을 옹호하는 자본주의제도 자체에 원인이 있다는것, 착취와 억압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사는 길은 자본의 착취와 억압을 반대하여 투쟁하는데 있다는것을 깨닫게 되였다.

    이와 같이 자연과 사회의 사물현상에 대한 인식의 결과인 과학지식과 진보적인 사상은 사람들의 운명개척에 이바지한다.

    모든 진보적인 사상과 과학지식이 사람의 운명문제해결에 이바지하지만 개별과학들은 운명문제에 대한 포괄적이며 전일적인 해명을 주지 못하며 따라서 그것이 운명개척의 방도를 밝혀준다고 할수 없다.

    철학을 제외한 다른 모든 과학은 자연과 사회의 어느 한 부분이나 측면, 과정을 연구대상으로 하며 거기에서 작용하는 필연적인 련관과 합법칙성을 밝힘으로써 사람들의 운명개척에 이바지하는것이다.

    개별과학과는 달리 철학은 전체로서의 세계를 연구대상으로 하며 세계의 본질과 그 변화발전의 합법칙성을 해명한다.

    그러나 철학의 사명은 단순히 세계를 해석하는데 있는것이 아니라 세계를 개조하고 변혁하는데 있으며 사람들로 하여금 옳바른 세계관을 가지고 자기 운명을 성과적으로 개척해나가도록 하는데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여 사람은 세계를 개조하고 변혁함으로써 자기 운명을 개척해나가며 자기 운명을 성과적으로 개척해나가자면 세계를 개조하고 변혁하는 무기인 옳바른 철학적세계관을 소유하여야 한다.

    

    

    2) 운명문제해결의 력사를 더듬어

    

    악몽에서 깨여나기까지

    

    사람의 운명에 대한 론의는 오랜 력사를 가지고있다. 원시사회로부터 사람들은 자기 운명에 대하여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원시인들은 자연의 동란이나 질병, 맹수의 침습을 피하여 자기의 생명을 보존할데 대하여 생각하였고 기본생업인 사냥이나 채집에서 좋은 결실과 유리한 조건이 차례지기를 바랐다.

    그러나 원시인들의 운명에 대한 생각은 매우 단순하였으며 허황한것을 믿는 미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극히 초보적이고 경험적인 지식밖에 가지지 못하였고 추상적사유능력도 매우 낮았던 원시인들은 자연의 모든 기괴한 현상들을 공포를 가지고 대하였고 그것을 물신, 바람신, 산신, 태양신과 같은 각이한 《신》들의 행위로 생각하면서 《신》이 노여움을 삭이고 은혜를 베풀어 자기 운명을 구원해주기를 소원하였다.

    사람의 운명에 대한 체계화된 론의는 계급사회의 발생과 함께 시작되였다. 계급사회에 들어서면서 《신》을 세계의 창조자로, 인간운명의 주재자로 보며 《저승생활》과 《래세》의 행복을 약속하는 종교적견해가 류포되게 되였다.

    B.C. 14세기 고대중국의 신학은 《천명》설이라는것을 내놓았는데 여기서는 이 세상의 모든 자연현상의 변화와 사회생활이 하늘 나라에 있는 《상제》의 지배를 받으며 국왕은 《상제》의 명령을 받아 사람들을 다스린다고 하면서 국왕에게 복종하지 않을 때에는 《상제》가 혹독한 벌을 주고 인민들에게 커다란 재난을 가져다준다고 하였다.

    이러한 종교적견해는 노예소유자제도를 신성화하고 인 민대중에 대한 착취와 억압을 강화하는데 복무하였으며 노예소유자계급에 의하여 더욱 조장되고 널리 퍼지게 되였다.

    한편 이 시기에 와서 인식과 실천에서 커다란 전진이 이룩되였으며 그에 기초하여 전통적인 종교적관념을 부정하고 세계를 그 자체로 설명하는 진보적인 유물론사상이 출현하였다.

    고대에짚트의 문학작품 《하프연주가의 노래》에서는 죽은 사람이 다시 소생하여 저승생활에 대하여 말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하면서《저승》에 대한 환상대신에 《현세의 일》에 정력을 바칠것을 호소하였다.

    뒤이어 에짚트와 인디아, 중국, 그리스, 로마 등 동방과 서방의 여러 지역에서 진보적인 사상가들이 그 어떤 특정한 물질을 시원으로 하여세계를 통일적으로 설명하였다.

    고대중국의 문헌에 기록된 《5행설》에서는 우주만물이 물, 불, 나무, 쇠, 흙 등 5가지 물질적요소로 이루어졌으며 또 그로부터 생긴다고하였다. 고대그리스사람들인 탈레스(B.C. 624- B.C. 547)는 《만물의 시원은 물이다. 만물은 물로부터 발생하여 결국 물로 돌아간다.》고 하였으며 헤라클레토스(B.C. 530-B.C. 470)는 《만물이 통일되여있는 우주는 그 어떠한 신에 의하여 창조된것이 아니라 합법칙적으로 타오르고 합법칙적으로 꺼지는 영원한 산 불일것이며 또 산 불이다. 불은 공기로 되며 공기는 물로 되며 물은 흙으로 변하며 반대로 흙은 물로 되며 물은 공기로 되며 공기는 불로 변한다.》라고 하였다.

    고대유물론은 비록 추측과 가정에 기초한 자연생장적이고 소박한것이기는 하지만 《신》에 의한 세계의 지배와 모든 운명을 《신》에 의탁할데 대한 허황한 종교교리를 배척하고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며 현실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는것을 깨우쳐줌으로써 사람들의 운명개척에 이바지할수 있었다.

    고대사회에서는 유물론철학에 상반되는 관념론철학도 발생하였다. 관념론은 그 어떤 정신적인것을 시원으로 하여 세계를 설명하는 철학이다.

    관념론은 《신》과 그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대신에 다른 그 어떤 정신적인것을 시원으로 보고 론리적방법으로 세계를 설명하는데서 구별될뿐 많은 점에서 종교와 공통성을 가진다.

    종교와 관념론은 언제나 서로 지지하고 동맹한다.

    여기로부터 고대사회에서 사람의 운명에 대한 론의는 종교관념론과 유물론의 대립과 투쟁으로 되였다.

    중세기에 들어와서 새로 등장한 봉건통치배들에게는 자기들의 지배권을 강화하기 위한 정신적지주가 필요되였다. 그들은 운명구제의 간판을 들고 사람들을 유혹하며 악에 대한 무저항, 현실과의 타협, 계급적지배에 대한 순종을 설교하는 종교를 저들의 계급적지배를 위한 더없이 좋은 정신적수단으로 여기고 그와 손을 잡았다. 그리하여 봉건통치계급에의하여 종교가 널리 퍼지고 종교적교리와 배치되는 그 어떠한 주장도 무자비한 탄압의 대상으로 되였다.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불교는 여러 나라들에 퍼져 세계적인 종교로 되였으며 종교가 사람들의 정신을 사로잡고 운명을 롱락하는 《종교시대》가 시작되였다.

    종교교리는 종교에 따라 일련의 차이를 가지지만 사람들이 자기의 운명을 숙명으로 받아들일것을 설교하는데서는 공통적이다.

    종교는 우선 전지전능하고 영원한 절대적존재 즉 신이 있다고 하면서 거기에 사람들이 운명을 의탁할것을 설교한다.

    종교교리는 하느님만이 세계의 창조자, 지배자이며 따라서 사람들은마땅히 하느님을 절대적으로 존경하고 숭배해야 하며 인간은 하느님의 의사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한다.

    종교에 의하면 인간의 운명은 절대자에 의하여 미리 정해져있는것이니 여기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한다. 이러한 관점은 사회생활에서 노예적굴종사상에로 이어진다.

    그리스도교는 인간은 신앞에서 죄를 지은 존재라고 설교한다.

    그에 의하면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는 원래 천상의 락원(에덴동산)에서 행복하게 살았으나 신의 뜻을 어기고 무화과를 따먹은것으로 하여 죄를 짓고 지상으로 추방되여 불행한 생활을 하게 되였다는것이다. 즉 인간이 현세에서 겪는 고통은 자기의 죄의 결과이라는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신앞에 지은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서는 현세의 고통을 묵묵히감수하여야 한다는것이다.

    종교는 다음으로 사람이 죽은 다음에도 영생할수 있는 《천당》이나 《극락세계》가 있다는것을 설교한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신의 뜻대로 산 사람은 죽은 다음 영원한 행복이담보되는 《천당》에 가서 잘 살게 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영원한 불행속에서 헤매이는 《지옥》에 가게 된다고 한다.

    불교에서도 역시 《극락세계》와 《지옥》을 설정하고 석가의 가르침대로 일생을 보낸 사람은 《극락세계》에 가게 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 악한 행위의 종류에 따라 형벌을 가하는 각이한 《지옥》에 가서무서운 고통을 받게 된다고 설교한다.

    종교에서는 신의 의사에 맞게 살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욕망을 억제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금욕주의를 설교한다.

    그리스도교의 성경에는 《불평을 하지 말고 너에게 차례지는 모든 생활을 참으라. 너의 최고목적은 천국이다.》라고 씌여있다.

    불교에서는 모든 욕망을 억제하여야 인생의 고통을 피할수 있고 리상적인 《열반》(정신적안정)상태에 도달한다고 한다.

    이처럼 종교는 모든 욕망을 버리고 현세의 생활을 그대로 감수하는것이 신의 의사에 따르는 생활로 되며 그렇게 살아야 《천당》이나 《극락세계》에 갈수 있다고 주장하는것이다.

    이것은 그 어떤 억압과 착취, 불행과 고통도 참고견디며 주어진 운명에 순종하여야 한다는것으로써 숙명론과 무저항주의를 설교하는것이다.

    유럽에서는 14세기 중엽부터 근대화과정이 시작되였으며 력사에서문예부흥기로 불리우는 15~16세기에 자본주의적발전의 길에 들어섰다. 당시 반봉건투쟁은 봉건세력의 지주인 카톨릭교회를 반대하는데 집중되였으며 부르죠아지들은 인간개성의 해방, 과학과 계몽을 요구하면서 신앙에 리성을, 관념론에 유물론을 대치시키였다.

    과학기술과 생산이 발전하고 종교의 절대적권위와 지배를 반대하는 투쟁이 강화되는 가운데 코페르니쿠스(1473-1543)의 지동설이 나왔다.

    코페르니쿠스의 발견은 세계는 신에 의하여 창조된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존재한다는것을 확증함으로써 종교관념론적세계관을 밑뿌리채 뒤흔들어놓았다.

    근대유물론의 시조는 영국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콘(1561-1626)이다. 그는 자기의 저서 《과학의 가치 및 발전에 관하여》에서 《사람은 자연을 지배할수 있다. 그러자면 지식에 의거하여야 한다. 지식은 힘이고 힘은 곧 지식이다》라고 하였다.

    홉스(1588-1679)는 인간을 창조한것은 신이 아니라 자연이며 국가권력도 사람들의 계약에 의하여 발전하였다고 하였다.

    사람의 운명에 관한 진보적인 사상은 18세기 프랑스의 유물론자들에 의하여 더욱 발전하였다. 18세기 프랑스유물론자들은 유물론적자연관에 의거하여 종교의 비과학성과 반동성을 예리하게 폭로하였으며 지배적인 승려주의를 정면으로 공격하였다.

    그들은 당시 이룩된 과학적성과에 토대하여 신이란 현실의 허황한 반영이며 사람들이 꾸며낸 하나의 환상이라는 무신론적견해를 내놓음으로써 종교의 기반을 뒤흔들어놓았다. 또한 당시 도달한 자연과학적성과들과 실천경험에 토대하여 세계는 물질로 이루어지고 운동은 그 존재방식이라는것, 인간의 사유가 현실세계를 정확히 인식할수 있다는것을 론증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에 대한 옳바른 인식에 기초하여 자기 운명을 개척해나가도록 하는데 일정하게 기여할수 있었다.

    그렇지만 17~18세기 유물론은 기계적이고 형이상학적인것으로서 신의 존재를 인정할수 있는 여지를 주었으며 결국 사람이 주어진 운명에순종해야 한다는 숙명론에 빠지게 하였고 또한 사회력사에 대한 관념론적립장에서 탈피하지 못하였다.

    형이상학적유물론자들은 사회력사는 착취계급의 대표자들, 왕이나 군사령관들의 의사와 견해에 의하여 규정되며 인민대중은 이들의 의사를실현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으며 사람들에게 유익한 견해를 주입하는 걸출한 개인이 력사발전에서 결정적역할을 논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사회발전에서 인민대중이 노는 역할을 부정한것이며 사람들의 운명문제에 그릇된 리해를 주는것이였다.

    근세부르죠아철학에서 변증법적경향은 도이췰란드고전철학에서 보다 강화되였다. 18세기말~19세기 전반기 봉건과의 타협을 모색하던 도이췰란드부르죠아지의 지향을 반영하여 발생한 도이췰란드고전철학은 관 념론의 테두리안에서나마 변증법을 비교적 체계있게 전개하였다.

    도이췰란드고전철학은 유물론과 변증법을 더욱 발전시킴으로써 사람의 운명문제를 외곡하고 숙명론을 고취하는 종교관념론과 형이상학을 극복하는데 기여하였지만 자기의 계급적 및 인식적제한성으로 하여 종교관념론과 형이상학을 완전히 타파하지는 못하였다.

    19세기 중엽 당시의 시대적 및 실천적요구를 반영하여 맑스주의가나왔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지난날 세계관의 발전력사는 상반되는 두 철학조류인 유물론과 관념론, 변증법과 형이상학의 투쟁력사였습니다. 맑스주의는 이 투쟁에서 유물론과 변증법의 승리를 확정하였습니다.》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발전하는데 따라 그 모순성과 부패성이 드러나게 되였으며 혁명적인 로동계급이 독자적인 정치세력으로 력사무대에 등장하여 자본을 반대하는 투쟁에 일떠서게 되였다. 새로운 력사적조건에서 자본을 반대하여 투쟁에 일떠선 로동계급에게 그 앞길을 밝혀주는 혁명사상이 요구되였다. 여기에서 선차적으로 나서는 문제는 자본의 지배를 신성화하고 그 영원성을 설교하는 관념론과 형이상학을 타파함으로써 피착취근로대중을 숙명의 잠에서 영원히 깨여나게 하는것이였다.

    이러한 요구를 반영하여 나온 사상이 맑스주의이다.

    맑스와 엥겔스는 철학발전의 전 력사를 통하여 이룩된 진보적이며 가치있는 모든것을 로동계급의 계급적요구와 지향에 맞게 비판적으로 개작하고 과학과 실천의 새로운 성과와 경험을 일반화 함으로써 새로운 로동계급의 철학을 창조하였다.

    맑스주의철학에 의하여 로동계급은 종교적환상과 관념론적허구에서벗어나 자연과 사회의 사물현상들을 있는 그대로, 합법칙적인 발전속에서 보는 과학적인 세계관을 가지게 되였으며 자기의 계급적처지와 해방의 조건을 깨닫고 자본을 반대하는 투쟁에 일떠서게 되였다.

    운명을 숙명으로 여기는 악몽에서 깨여나게 한것은 맑스주의철학이며 바로 여기에 운명문제해결에서 맑스주의철학이 이룩한 력사적공적이 있다.

    숙명의 잠에서 깨여나는것은 사람의 운명문제해결에서 하나의 전환으로 되지만 완전한 해결로는 되지 못한다.

    사람들이 자기 운명을 개척해나가기 위하여서는 운명이 숙명이 아니라는것을 깨달아야 할뿐아니라 운명개척의 방도를 알아야 한다.

    운명문제해결에서 나서는 이 과제는 사람중심의 철학인 주체사상이 창시됨으로써 해결될수 있었다.

    

    장엄한 해돋이

    

    해돋이는 새날의 상징이다. 밤이 지새면 어둠은 물러가고 대지에 광명이 온다. 밤의 어둠을 몰아내고 누리를 밝히며 새날의 광명을 가져오는것이 바로 해돋이이다.

    자연계의 해돋이는 그 스스로의 현상이다. 낮과 밤이 바뀌는것은 자연계의 영원한 법칙이며 밤이 지나면 누가 불러서가 아니라 자연히 해가 솟고 온 세상이 밝아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람의 운명개척의 앞길은 저절로 밝혀지지 않는다.

    앞에서 이야기한것이지만 운명개척의 앞길은 옳바른 사상이 창시되여야만 제대로 밝혀질수 있는것이다. 또 인류의 리론적사유가 시작된 이래 수많은 사상가들이 있었고 각이한 사상들이 많았어도 운명개척의 앞길을 밝혀주지 못하였다는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과연 그처럼 오랜 세월 암중모색하면서도 불러올수 없었던 운명개척의 해돋이, 그것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였던가.

    20세기 20년대에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와 억압을 반대하는 로동계급과 인민대중의 투쟁에서는 새로운 전환이 일어나고있었다.

    1917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로씨야사회주의10월혁명이 승리하였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승리한 사회주의의 영향력이 강화되는데 따라 자본의 착취와 억압을 반대하는 로동계급의 투쟁이 앙양되였다. 19세기중엽만 하여도 주로 유럽의 몇몇 발전된 자본주의나라들에 국한되여있던 로동계급의 혁명적진출은 이 시기에 이르러 도이췰란드, 마쟈르, 일본, 이딸리아, 영국, 프랑스, 미국 등 거의 모든 자본주의나라들을 휩쓸면서 자본주의제도를 밑뿌리채 뒤흔들어놓았다.

    로씨야에서의 사회주의10월혁명은 특히 동방인민들의 민족해방투쟁을 크게 추동하였다. 지난날 자본주의문명을 위한 밑거름으로, 제국주의의 후방으로 되여온 식민지, 반식민지나라 인민들은 제국주의를 매장하는 투쟁에 결연히 떨쳐나섰다. 동방의 여러 나라들에서는 로동계급의 당들이 창건되고 인민들이 당의 령도밑에 민족해방투쟁의 불길을 더욱 높였다.

    온 세계가 말그대로 온갖 착취와 억압을 불사르기 위한 인민대중의 격전장으로 화하였다.

    모든 사실들은 바야흐로 도래하려는 인민대중의 운명개척의 새 시대를 예고하고있었다.

    그것은 인민대중이 력사의 주인으로 등장하여 자기 운명을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개척해나가는 인류력사발전의 새 시대, 주체시대였다.

    주체시대는 인민대중이 력사상 처음으로 세계와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등장한 시대이다. 녀자노예 한명을 270g의 은으로 사고 팔던 아득한 고대사회로부터 인간의 인격적가치를 교환가치로 전환시키고 인간을황금의 노예로 만든 자본주의사회에 이르는 착취사회의 전기간 인민대중은 착취자들과 억압자들의 리익과 전횡의 희생물로, 그들이 강요하는 운명의 노예로 되여왔다. 주체시대에 이르러 인민대중은 마침내 세계와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등장하였다. 인민대중은 자기 운명을 자기 손에 확고히 틀어쥐고 력사의 발전을 추동하고있다.

    주체시대는 또한 인민대중이 력사와 자기 운명을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개척해나가는 새로운 시대이다.

    지난날 근로인민대중은 자기 의사대로가 아니라 많은 경우 지배계급의 의사에 따라 력사를 창조하는 무거운 부담을 걸머지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러나 주체시대에 와서 인민대중의 역할은 근본적으로 달라져 인민대중이 력사의 의식적인 창조자로 되여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고 변혁하는 투쟁에서 자기의 위력을 높이 발휘하고있으며 온갖 지배와 예속을 반대하고 새 세계를 창조하는 투쟁에 힘차게 떨쳐나서고있다.

    운명개척의 새로운 시대, 새롭게 도래한 주체시대는 인민대중의 투쟁의 앞길, 운명개척의 근본방도를 정확히 밝혀주는 사상의 창시를 절박하게 요구하였다.

    선행한 로동계급의 혁명사상인 맑스주의는 로동계급의 해방투쟁에 공헌하였지만 이 시기에 와서 제한성을 면할수 없게 되였다.

    력사적사실이 보여주는것처럼 지난날 유럽의 몇개 자본주의나라들에국한되여있던 인민대중의 투쟁은 이 시기에 이르러 세계의 여러 대륙으로, 자본주의나라들뿐아니라 식민지예속국가들에로 번져져 전세계적범위에로 확대되였다. 뿐만아니라 그 투쟁의 사회력사적조건과 발전수준, 성격과 과업도 비할바없이 다양해졌다. 계급적지배와 예속의 력사를 끝장내기 위한 계급해방투쟁이 벌어졌는가 하면 제국주의의 식민지통치와 략탈에서 벗어나기 위한 민족해방투쟁도 벌어졌다. 계급해방투쟁의 경우에도 반봉건투쟁이나 자본가계급을 청산하기 위한 투쟁 등으로 각이하게 번져졌다.

    기본적으로 자본주의나라들에서 로동계급의 계급해방의 조건을 밝혀주고있는 맑스주의로서 이처럼 전세계적범위에서 폭넓고 다양하게 벌어지는 인민대중의 투쟁에서 제기되는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할수 없다는것은 명백한 리치였다.

    례컨대 조선과 같이 식민지반봉건사회의 뒤떨어진 처지에 있었던 나라들의 조건에서는 반제민족해방혁명과 반봉건민주주의혁명의 과업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였다. 그런데 맑스주의에는 이에 대한 리론적해결이 전혀 주어져있지 않았다.

    당시까지는 이런 혁명을 경험해본 나라도 없었고 따라서 그에 대한 처방을 어디에 가서 얻어올수도 없었다.

    새로운 력사적조건에서는 매개 나라 인민대중에게 다 들어맞는 만능의 처방이 있을수 없었으니 오직 모든 문제를 자기 힘으로, 자기 나라의 실정에 맞게 풀어나가야만 하였다.

    새 시대는 매개 나라 로동계급과 인민들이 혁명에 대한 주인다운 자각을 가지고 모든 문제를 자체의 실정에 맞게 풀어나갈것을 요구하였으며 이러한 요구에 해답을 주는 새로운 사상의 창시를 절박하게 요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누구도 변화된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주의를 돌리지 못하고있었고 의연히 기성의 사상과 리론에 매달려 사대와 교조의 심연속에서 헤매고있었다. 하여 인민대중은 압제자들을 반대하여 일떠섰지만 갈길 몰라 방황하면서 헛되이 피를 뿌리고있었다.

    1910년대 말~1920년대 초에 걸쳐 큰 규모로 일어났던 자본주의나라들에서의 로동운동은 자본주의의 일시적장성을 계기로 제국주의자들의반동공세가 강화됨에 따라 시련을 겪고있었고 새롭게 앙양되기 시작한 식민지, 반식민지나라들에서의 민족해방운동도 쓰라린 실패를 되풀이하고있었다.

    인민대중에게 있어서 새로운 지도사상의 출현은 실로 운명을 건 중대사였다.

    그러나 당시 공산주의운동안의 그 어느 령도자나 당들도 세계무대에서 일어나고있는 사변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하여 분석판단하지 못하고있었고 더우기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해답을 주는 문제를 생각조차 못하고있었다.

    례컨대 1928년 7월에 있은 국제공산당 제6차대회에서는 제1차세계대전후 10여년간의 정세를 분석하면서 자본주의의 모순이 더욱 격화되고 특히 아시아나라들에서 식민지민족해방투쟁이 앙양되고있다는것을 지적하였지만 그것을 단순히 정세의 변화로만 보고 새로운 력사적시대의도래에 대해서는 보지 못하였다. 따라서 이 대회는 일련의 전략전술적문제들을 토의하는데 그치고말았다.

    인민대중의 운명개척의 옳바른 앞길을 밝혀주는 새로운 시대사상을 창시할데 대한 력사발전의 중대한 요구는 오직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에 의해서만 해결될수 있었다.

    조선의 만경대의 가난한 초가집에서 탄생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그이는 조선인민이 수천년력사에서 처음으로 맞이하고 높이 모신 탁월한 수령, 인민대중이 오랜 세월 찾아헤맨 운명개척의 참된 진리를 인민속에서 찾아내시고 억만가닥 빛발에 담아 누리에 뿌려주신 만민의 태양이시다.

    위대한 사상은 비범한 사상리론적예지의 소산이다. 사상은 시대가 요구한다고 하여 저절로 나오는것이 아니며 또 아무나 내놓을수 있는것도 아니다. 뛰여난 사상리론적예지를 지닌 위대한 사상리론가라야 시대의 요구를 정확히 반영한 사상을 내놓을수 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인민에 대한 한없이 뜨거운 사랑과 비범하고도 출중한 사상리론적예지를 지니고계신 불세출의 사상리론가이시였다.

    특출한 탐구력과 창조적사색력, 천리혜안의 통찰력과 명철한 분석력, 비상한 기억력과 한없이 넓은 식견과 지식, 뛰여난 저술력 등 그이께서 지니신 비범한 사상리론적예지는 그 어느 위인도 따를수 없는 천품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무송제1소학교에 다니시던 때에 있은 일이다.

    어느 화창한 봄날 학교에서 조직된 들놀이에 참가하시여 숲속을 거니시던 수령님께서는 한그루의 나무에 손칼로 《일본제국주의 타도, 조선독립》이라는 글발을 새기시였다. 이때 그옆을 지나가던 교장이이것을 보고 그이께 어린 학생이 어떻게 강대한 일본을 타도할수 있겠는가고 물었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선사람은 누구나 다 왜놈을 미워하고있다고 하시면서 인민의 힘을 한데 모으면 능히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할수 있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아직 어린 소년으로만 여겨오던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너무도 놀라운 대답을 듣게 된 교장과 교원들은 그이의 높은 애국정신과 확고한 신념, 원대한 뜻에 탄복하지 않을수 없었다.

    당시 무송 제1소학교에서 교편을 잡고있던 마선생은 그 시절의 위대한 수령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회상하였다.

    《…날이 감에 따라 우리들은 김성주(그이의 원래의 존함)소년이 나이는 아직 어리지만 보통사람이 아니라는것을 느꼈다. …당시의 김성주소년은 총명하고 강직한 학생으로만 그친것이 아니라 큰 포부와 넓고 깊은 일가견을 가지고있는 정치활동가였다. 사실 그이는 벌써 사물에 대한 인식과 분석에서 우리 선생들을 릉가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아무리 복잡한 현상이 뒤엉킨 속에서도 언제나문제의 본질을 명철하게 꿰뚫어보시고 천리혜안으로 먼 앞날을 환히 내다보시는 비범한 통찰력과 분석력, 비상한 판단력을 지니고계시였다.

    수령님의 사상리론적예지는 혁명실천이 요구하는것이라면 그 어떤 기성리론이나 경험에도 구애되지 않고 철저한 주체적립장에서 모든 문제를 새롭게 풀어나가는 특출한 탐구력과 창조적사색력으로 하여 더욱 비범하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일찌기 선진사상을 탐구하시던 길림시절에 맑스, 레닌의 주요저작들을 거의 통달하다싶이 했다는 박소심이라는 사람에게 맑스-레닌주의고전들에서 계급적해방이 선차이고 민족적해방이 후차라고 했지만 우리 나라는 우선 일제의 기반에서 벗어나야 로동자, 농민이 계급적으로도 해방될수 있지 않는가고 물으신적이 있었다. 어정쩡하게 대답하는 박소심에게 김일성동지께서는 고전들에서는 일반적으로 종주국에서의 혁명과 식민지나라들에서의 혁명이 유기적으로 련결되여있다고 하면서 종주국에서의 혁명승리가 가지는 의의만을 강조하고있는데 그렇다면 일본로동계급이 혁명에서 승리해야 우리 나라가 독립될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우리는 그들이 승리할 때까지 가만히 앉아있어야 한단말인가고 또 물으시였다.

    그러자 박소심은 대답을 못하고 놀란 눈으로 김일성동지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것이 계급적해방을 민족적해방에 앞세우고 종주국로동계급의 투쟁을 식민지나라에서의 민족해방투쟁보다 중시하는것은 세계적으로 공인된 국제공산주의운동의 로선상의 문제였던것이다.

    당시 맑스-레닌주의는 세계 피압박, 피착취근로대중의 해방의 기치로 공인되여있었고 누구를 물론하고 그 진리성과 보편성여부에 대하여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있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오직 10대의 젊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비범한 창조적사색력으로 맑스-레닌주의의 제한성을 꿰뚫어보시고 그것을 조선혁명에 창조적으로 적용하시였던것이다.

    이처럼 그이의 비범한 천품을 보여주는 이야기는 헤아릴수 없이 많다.

    또 작은 지면에 불세출의 위인의 풍모를 다 담는다는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 아닐수 없다.

    그러니 다만 주체사상이 인민에 대한 전무후무한 사랑이 낳은 숭고한 산물이라는데 대하여서만 좀 더 이야기해보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인민에 대한 한없이 뜨거운 사랑을 지니고계신 숭고한 인덕의 최고화신이시였다.

    삶의 목표도 인생의 포부와 리상도, 삶의 보람과 행복도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바치는 비길데 없이 고결한 사랑, 이것이 바로 김일성동지께서 지니신 인민에 대한 사랑이였다.

    김일성동지의 사랑은 수천만 인민들에게 인간의 존엄과 자유롭고 행복한 새 삶을 안겨준 위대한 사랑이였고 천대받고 억압받던 사람들을 보람찬 투쟁의 길로 이끌어주고 영생하는 정치적생명을 안겨준 한없이 고귀한 사랑이였다.

    위대한 사랑의 힘은 참으로 크다.

    오로지 인민들의 운명을 두고 걱정하시며 인민의 행복한 미래를 위하여 사색하고 또 사색하신 김일성동지의 로고에 의하여 바로 사람의 존엄과 가치를 최상의 높이에 올려놓고 모든것을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사람을 위하여 복무시킬데 대한 사상, 수억만 인민대중을 혁명의 참다운 주인으로 키워 누구나가 다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리상사회를 건설하는 휘황한 길을 밝힌 불멸의 주체사상이 창시되였다.

    김일성동지께서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 나라와 민족을 구원할 일념으로 심신을 불태우시던1930년대 초 중국동만지방의 곳곳에서는 5.30폭동의 후과로 참혹한 류혈이 벌어지고있었다.

    무지막지한 반동의 총칼앞에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눈앞에 그리시며 김일성동지께서는 어떻게 하면 조선인민을 피바다속에서 구원해낼수 있겠는가, 어떻게 하면 조선민족해방투쟁을 역경속에서 건져내고 승승장구하는 혁명에로 인도할수 있겠는가 하고 사색하고 또 사색하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전 세계 피압박, 피착취근로대중의 절대적인 지지와 동경을 모으고있던 맑스-레닌주의도 깊이 연구하시였다. 중국의 화전, 길림 등으로 활동무대를 옮기시던 나날은 말그대로 《공산당선언》, 《자본론》을 비롯한 고전들을 모두 탐독하시며 맑스-레닌주의에 정통하시던 나날들이였는데 맑스-레닌주의고전에도 식민지반봉건사회의 조건에서 인민의 운명을 구원할 처방이 없었다.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조선혁명의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기 위한 고심어린 탐구의 날과 달이 흐르는 과정에 그이께서는 마침내 조선민족해방투쟁을 이끌어온 선행세대의 로선이나 전략 등이 가지고있는 심중한약점들을 발견하시였다.

    선행세대의 전략이나 로선이 가지고있는 약점은 우선 인민대중의 힘을 믿지 않고 외면한데 있었다.

    선행세대의 운동자들은 한결같이 인민대중을 무시하고있었다. 수백만대중의 조직된 힘에 의거해야 일제를 타도할수 있겠는데 혁명도 독립전쟁도 특수한 몇몇 사람들만 하는것으로 알고있었다.

    특히 초기조선공산주의운동을 한다고 하던 사람들은 이런 립장에서 기초축성은 별로 하지 않고 몇몇 상층인물들끼리 당중앙을 선포하는 방법으로 당을 만들었으며 대중속에 깊이 들어가지 않고 《3인 1당》, 《5인 1파》하는 식으로 서로 분렬되여 여러해동안 령도권싸움만 벌리면서 오히려 대중을 분렬시켰다. 종파분자들은 제가끔 자기 파를 《정통파》로 내세우면서 다른 파를 배척하였으며 자파세력의 확장에 광분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혁명투쟁에 나서신 첫 시기부터 이들의 잘못을꿰뚫어보시고 이들과는 다른 길, 인민대중속에 깊이 뿌리박고 인민대중의 힘에 의거하여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는 새로운 길을 걸으시였으며 이과정에 혁명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인민대중속에 들어가 그들을 교양하고 조직동원하여야 혁명에서 승리할수 있다는 진리를 발견하시였다.

    인민대중이 혁명의 주인이며 혁명을 추동하는 힘도 인민대중에게 있다는 진리, 이것이 바로 김일성동지께서 밝히신 운명개척의 새로운 사상의 출발점의 하나였고 그이의 모든 사상리론활동과 혁명투쟁의 초석으로 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자신께서 인민대중을 혁명의 주인으로 보신 새로운 관점에 대하여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이렇게 회고하시였다.

    《…우리는 무장투쟁만 하게 되면 3~4 년안팎에 일본을 패망시킬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젊은 혈기가 아니고서는 감히 엄두도 낼수 없는 생각이였다. 일본군벌들이 그런 고백을 들었더라면 아마 앙천대소하였을것이다.

    무슨 담보로 그렇게 판정했는가고 물으면 대답할 말이 없다. 맨 주먹밖에 없는 우리에게 도대체 무슨 담보가 있었겠는가.

    …

    우리에게 있는것은 애국심이였고 젊은 혈기뿐이였다. 우리가3~4년안팎이라고 한것은 일본의 힘을 경시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애국심이 그보다 더 강하고 정의롭다고 생각하였기때문이다. 우리에게 담보가 있었다면 그것은 2천만 민중의 힘이였다. 2천만을 잘 훈련시켜 도처에서 들고일어나 일본군경들을 족치면 나라를 독립시킬수 있으리라는 배심이 우리에게 있었다.》


    선행운동자들의 로선이나 전략들은 또한 조선의 현실에 발을 튼튼히 붙이지 못한 심중한 약점을 가지고있었다.

    사대주의에 심히 물젖고 파벌싸움의 악습을 답습한 민족주의자들과 행세식 맑스주의자들은 자체의 힘으로 혁명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외세에 의존하여 독립을 이룩해보려고 망상하였고 우리 나라의 력사적조건과 구체적현실을 떠나서 기성리론과 남의 경험을 기계적으로 모방함으로써 민족해방운동과 공산주의운동에 엄중한 손실을 끼쳤다.

    1930년 중국의 동만에서 일어난 5.30폭동이 그러했다.

    당시 중국공산당의 지도권을 잡고있던 리립삼은 1925년 5월에 있은 상해시민들의 영웅적투쟁을 기념하기 위하여 전국에서 로동자, 학생,시민 3파가 파업을 일으키는 동시에 폭동형식의 투쟁을 전개하여 쏘베트유격대를 창설할것을 전당에 지시하였다.

    다른 나라 당안에서 일시적으로 좌경모험주의적폭동로선이 지배하고있는것을 본 종파사대주의자들은 그 정당성여부도, 그것이 우리 혁명의 구체적실정에 맞는지 안맞는지도 따져보지 않고 덮어놓고 수많은 혁명군중을 폭동에로 내몰아 값없이 희생시키고 혁명에 막대한 손실을 끼쳤다.

    중국당에 가입하려고 애쓰던 만주총국소속의 종파주의자들은 혁명의 운명이나 대중의 희생은 아랑곳하지 않고 폭동에서 자신과 자파의 명성을 떨쳐 국제당의 신용을 얻으며 자기파가 지도적지위를 차지하려고 하면서 인민들을 무모한 폭동에로 내몰았으며 청산하지 말아야 할 대상들까지 청산하고 지어 학교와 발전소에까지 불을 질렀다.

    이 폭동의 주력을 담당한것이 만주에 거주하고있던 조선사람들이였던 관계로 5.30폭동은 일제와 중국의 반동군벌들로 하여금 조선의 반일투쟁과 공산주의운동을 탄압할수 있는 좋은 구실을 주었다.

    군중들은 막대한 희생을 내면서 농촌과 산간오지로 쫓겨나지 않으면 안되였고 수천명이 체포되고 살해되였다.

    남의 풍에 노는 교조와 사대주의는 이처럼 인민대중의 운명에 커다란 피해를 주기 마련이다.

    자기 운명은 자기의 신념에 따라 자기가 책임지고 개척하여야 하며운명개척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자주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때를 회고하시여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다음과 같이 쓰시였다.

    《나는 조선의 산 현실에 부합되는 옳은 지도리론을 내놓자면 고전이나 다른 나라의 경험을 절대시하지 말고 모든 문제를 자체의 실정에 맞게 독자적으로 사고하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풀어나가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였다.》

    누가 승인을 하든 말든 자기 운명을 자신이 책임지고 나서는 모든 문제를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것, 이것이 김일성동지께서 발견하신 새로운 진리의 다른 하나였다.

    중국의 길림감옥과 돈화와 고유수에서 모든것을 조선인민의 운명을 구원하기 위한 새로운 사상을 모색하기 위해 바쳐오신 김일성동지!

    그이께서는 마침내 1930년 6월 30일 카륜(중국의 길림성 장춘현)에서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지도간부회의를 여시고 《조선혁명의 진로》라는 보고에서 후날에 주체라는 이름으로 불리울 위대한 사상을 온 세상에 선포하시였다.

    김일성동지에 의한 주체사상의 선포, 그것은 인류의 운명에 수수천년 짙게 드리웠던 어둠을 밀어내고 력사의 새날이 시작되였음을 알리는 장엄한 해돋이였다.

    주체사상은 자주적으로 살며 발전하려는 인간의 사회적본성에 맞게자연과 사회와 인간자신을 철저히 개조하여 사람들을 세계와 자기 운명의 완전한 주인으로 만들며 인류의 영원한 행복과 번영의 길을 밝혀주는 가장 완벽한 혁명학설이다.

    주체사상은 인민대중이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등장한 인류력사발전의 새로운 시대의 요구와 선행한 시대의 진보적사상들을 전면적으로 분석총화하고 자기 운명을 개척하기 위한 인민대중의 투쟁경험을 일반화하여 사람의 운명문제에 직접적이고 전면적인 해답을 주었다.

    주체사상은 력사상 처음으로 사람의 본질적특성에 대한 과학적해명을 준데 기초하여 사람의 운명의 주인은 사람자신이며 사람의 운명을 개척하는 힘도 사람자신에게 있다는 원리, 사람의 운명개척의 근본원리를 명시하였다. 하여 수세기에 걸쳐 천대와 멸시, 착취와 억압을 받으며 생존권마저 략탈당하고있던 인민대중이 비로소 노예적굴종과 사대의 사상관점을 불사르고 참다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게 되였으며 운명의노예로부터 운명의 주인으로 되는 인간해방의 참다운 철학을 받아안게 되였다.

    주체사상에는 인민대중이 온갖 구속과 예속에서 벗어나 세계와 자기운명의 완전한 주인으로 되는 근본방도가 명시되여있으며 인민대중을 령도하여 사회발전을 곧바른 승리의 한길로 이끌어나가는 정치의 원리적, 방법론적기초가 담겨져있다.

    주체사상은 세계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밝혀주는 철학적원리에 기초하여 사람들이 운명의 주인으로서 가져야 할 옳바른 견해와 세계를 인식하고 개조하는 방법과 원칙을 주고있으며 가장 완성된 혁명리론과 전략전술, 령도방법을 가르쳐주고있다.

    주체사상이 창시됨으로써 온갖 사회적예속과 자연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살려는 인류의 세기적숙원이 과학으로 확고히전환되고 인민대중이 뚜렷한 전망과 신심, 과학적인 방도를 가지고 자기운명을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개척해나가는 력사의 새 시대가 펼쳐지게 되였다.

    참으로 김일성동지에 의한 주체사상의 창시는 력사발전의 방향각을 인민대중의 자주적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로 전환시켜 사람의 운명개척에서 근본적인 변혁을 가져온 세계사적사변으로 되였다.

    1930년 6월 30일.

    바로 이날 김일성동지께서 선언하신 인간해방의 영원한 사상이 조선인민의 신념과 의지가 되고 인류의 운명개척의 새로운 리정표가 되여 천대와 멸시에 억눌렸던 인간들의 잠을 깨우며 장쾌한 력사의 새날을 불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