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48(1959)년 4월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모란봉의 청년공원건설장을 현지지도하시다가 일군들에게 기자묘를 어떻게 하겠는가고 물으시였다.

    그들은 선뜻 대답을 올리지 못하였다.

    솔직히 말해서 그때까지 일군들은 기자묘가 봉건통치배들의 사대주의사상의 소산이라는데 대하여 정확한 인식을 가지고있지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답을 올리지 못하는 일군들을 바라보시며 기자묘가 생겨나게 된 유래를 알기 쉽게 해설해주시였다.

    은나라사람인 기자가 조선에 와서 나라를 세웠다고 전해지는 이야기는 전혀 터무니없는것이였다.

    그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외래침략자들이 조선에 대한 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꾸며낸것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봉건사대부들은 마치 조선은 기자에 의해서 생겨나고 발전하여온듯이 력사를 외곡하면서 모란봉에 기자묘라는것까지 만들어놓고 숭배하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러한 력사적사실을 일군들에게 일깨워주시고나서 조선민족을 기자의 후손으로 보면서 전혀 무근거한 기자묘까지 만들어놓은것은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가진 슬기로운 조선민족에 대한 모독이라고 교시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기자는 조선사람과 아무런 인연도 없고 기자묘는 기자의 실지 무덤이 아니기때문에 파보면 아무것도 없을것이라고 하시면서 이번 기회에 파헤쳐보는것이 좋겠다고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기자묘를 력사주의적원칙에서 과학적으로 해명하도록 유능한 고고학자들을 현장에 보내주시였다.

    긴장한 분위기속에서 기자묘를 파헤치는 작업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깊이 파헤칠수록 더욱더 숨을 죽이고 묘안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거의 밑창이 드러나도록 파헤치였지만 무덤이라고 인정할수 있는것이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되여 마침내 기나긴 세월을 두고 허울속에 묻히였던 기자묘가 가짜라는것이 확증되였다.

    기자묘를 진짜로 믿고있던 로인들은 얼굴을 붉히며 돌아앉았다.

    그들은 남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면 가짜도 진짜로 보는 머저리가 된다는것을 새삼스럽게 느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