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전위》신문에 깃든 크나큰 사랑

    주체85(1996)년 1월 20일은 조선청년들의 친근한 길동무인 청년보가 《청년전위》라는 고귀한 제호를 받아안은 날이다.

    해방된 조국의 첫 기슭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몸소 창간해주시고 《청년》이라고 제호를 제정해주신 그때로부터 《청년전위》신문이 걸어온 70여년의 나날들에는 조선청년들을 끝없이 아끼고 사랑하신 절세위인들의 뜨거운 사랑과 크나큰 믿음이 깃들어있다.

    주체35(1946)년 4월 20일 청년보의 창간을 선포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 조국건설의 그처럼 바쁘신 속에서도 신문사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를 너무도 뜻밖에, 너무도 일찌기 잃은 크나큰 슬픔과 비통함에 산천초목도 목놓아울던 그때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상실의 아픔을 애써 누르시며 당시 민주청년사에서 올린 기사원고를 보고계시였다.

    그 원고에는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 고귀한 혁명생애의 마지막나날에 쓰신 친필이 새겨져있었다.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신문에 실으려고 민주청년사에서 가져온 원고입니다.

    장군님께서 너무 바빠하시기에 올리지 못하고있었는데 꼭 보아주시고 가르치심을 주시기 바랍니다. 1949년 9월 21일

    김정숙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피눈물을 삼키는 경위대원들을 바라보시며 김정숙동무가 후대들을 위하여 부탁하고 간 글인데 꼭 보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기사원고를 한장한장 번져가시며 지도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준엄한 전화의 나날에도 자신께서 계시는 최고사령부와 가깝고 교통도 비교적 편리한 곳을 골라 신문사의 소개지로 정해주시고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가 시작되였을 때에는 민주청년사의 후퇴정형을 료해하시며 운반수단과 식량도 몸소 해결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은 해주-하성사이 철길개통식의 날 기자들은 천리마의 앞장에서 달려야 한다시며 개통렬차의 맨 앞칸에 태워주신 감동적인 이야기에도, 몸소 신문에 실린 기사 《인간의 생명을 위하여》를 보아주시고 로동당시대, 천리마시대 사람들의 도덕상태를 알수 있다고 그리도 만족해하시며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이 사업에 착수하기 전에 독보하도록 하신 이야기에도 깃들어있다.

    《청년전위》신문이 걸어온 자욱자욱에는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와 따뜻한 보살피심도 숭엄히 깃들어있다.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 50돐을 하루 앞두고 신문사를 찾으시여서는 동무들이 찍는 사진 한장한장이 우리 나라 전체 청년들을 교양하는 거울로 된다고 하시면서 수령님의 탄생 50돐 특집을 특별히 힘을 넣어 잘하도록 하시였으며 조선사회주의로동청년동맹이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으로 강화발전된데 맞게 주체85(1996)년 1월 20일부터 당시 《로동청년》으로 되여있던 신문의 제호를 《청년전위》로 고치도록 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사랑과 믿음의 세계는 오늘 숭고한 후대관, 미래관을 지니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의 손길아래 끝없이 이어지고있다.

    몇해전 3월 어느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혁명적인 사상공세가 벌어지는 격동적인 현실의 요구에 맞게 《청년전위》신문의 역할을 더욱 높여나가는데서 나서는 세심한 가르치심을 주시고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제4차 초급일군대회 참가자들에게 보내주신 력사적인 서한에서 청년들은 《청년전위》신문을 빠짐없이 보아야 한다고 간곡히 가르쳐주시였다.

    절세위인들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에 의하여 《청년전위》신문은 오늘도 조선로동당의 청년중시사상을 붓대로 받들어나가는 길에서 자기의 영예로운 사명을 다해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