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랑의 서사시를 수놓으신 절세위인

    주체72(1983)년 9월 어느날 밤이였다.

    평양산원공원의자에는 기대와 경탄, 희망과 부러움이 엇갈린 눈길로 산원을 바라보며 외국인부부가 나란히 앉아있었다.

    그들은 바로 당시 조선주재 팔레스티나해방조직대표부 대표로 갓 임명되여온 무스타파와 그의 안해 야스민이였다. 그들은 10여년전에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지만 마음속에 남모르는 고충을 안고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아직 자식을 보지 못하고있었던것이다.

    남편의 대를 이어주지 못하는 괴로움을 안고 야스민은 병을 고쳐보려고 무진 애를 써보았다. 이 세상에 좋다는 약은 다 구해다 치료해보았고 이 분야의 의술이 발전했다고 하는 나라들은 다 가보았지만 허무한 시간과 거액의 돈만 랑비하였다.

    모든것을 포기하였던 야스민은 어느날 신문과 방송을 통해 조선의 김정일령도자께서 녀성들을 위한 산원을 평양에 건설해주셨다는 소식에 접하게 되였다. 그의 마음속에는 다시금 희망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조선에 그토록 가보고싶던 야스민이 남편을 따라 조선에 오자마자 평양산원부터 찾은것이였다. 야스민은 이곳에서 보고 듣는 모든것이 꿈만 같았다.

    평양산원의 중앙현관홀에 들어선 그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아이들을 낳아키우는 녀성들을 위해 그들의 발밑에 보석주단을 깔아주도록 하시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그의 놀라움이 더욱 커진것은 종합검진을 받은 후였다. 사실 그는 CT촬영만은 받지 않으려고 결심하였다. 그것은 그가 서유럽의 어느 한 나라 병원에서 CT촬영을 하였을 때 엄청난 돈을 지불하였기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걱정은 공연한것이였다. 평양산원의 의료일군으로부터 위대한 장군님께서 당신과 같이 싸우는 나라에서 온 벗들을 조선인민들처럼 무상으로 치료해주도록 크나큰 사랑을 베풀어주시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야스민은 뜨거운 격정을 억누르지 못하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크나큰 은정에 의해 그는 평양산원에서 7개월간의 치료를 받고 서방의사들이 진단을 내렸던 《불치의 병》을 깨끗이 털어버리였다. 평양산원에서 퇴원한 야스민은 1년후 드디여 귀여운 딸을 낳게 되였다.

    그들부부의 기쁨은 이를데없이 컸다. 그들은 부모로서 새 생명에게 이름을 지어주어야 하였다. 하지만 무스타파와 야스민은 자기 딸의 이름을 지어주실분은 오직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뿐이시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위대한 장군님께 가장 뜨거운 감사와 함께 자기들의 간절한 청을 아뢰는 편지를 삼가 올렸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혁명과 건설을 령도하시는 그처럼 바쁘신 속에서도 한 외국인부부의 편지를 친히 보아주시고 딸의 이름을 《진달래》로 짓도록 하시고 그들에게 대를 두고 길이 전할 사랑의 선물까지 보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진달래가 첫돌을 맞을 때인 1986년에 또다시 선물을 보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선물을 받아안은 무스타파부부는 자기들을 행복한 아버지, 어머니로 되게 해주시고 딸의 건강과 장래를 축복하여 귀중한 선물까지 보내주신 그 각별한 은정에 감격해하였다.

    그후에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해마다 진달래의 생일때면 은정깊은 선물들을 보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인간사랑의 빛발속에 무럭무럭 자라난 진달래는 김정일장군님은 나에게 생명을 안겨주시고 따뜻한 사랑을 돌려주신 친어버이이시라고 하면서 《나는 조선의 딸이다.》라고 소리높이 격정을 터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