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지역주체사상연구소 소장이였던 교수, 박사 티. 비. 무케르지에 대한 이야기-


    

     티. 비. 무케르지교수는 1920년에 인디아의 비하르주에서 출생하였다. 정당관계는 무소속이며 신앙관계는 인디아의 전통적종교인 힌두교를 믿는다. 인디아의 정치학박사이며 문학박사인 그는 조선의 철학박사학위를 소유하고있으며 46년간 인디아의 여러 종합대학들에서 교수로, 부총장으로 활동하였다.

     1970년대 후반기부터 그는 주체사상신봉자들의 대오에 서서 정력적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동료들에게 언제나 주체사상에 접함으로써 자기의 진정한 삶이 시작되였으며 자기는 《주체의 인간》이라고 긍지높이 말하군 하였다.

     그러면 《주체의 인간 무케르지》, 이 말에는 어떤 사연이 담겨져있는가.

     무케르지는 오래동안 대학교단에 서있던 경험있고 권위있는 교육자였다.

     인디아의 대표적민족인 힌두족출신인 그의 청소년시절은 비하르주의 파트나시에서 흘러갔다. 이 도시를 중심으로 한 비하르주는 인디아에서 비교적 사상문화가 발전한 지역에 속한다고 말할수 있다.

     무케르지는 그곳에서 나서 자랐으며 파트나종합대학에서 법률학을 전공하였다. 대학시절 그의 리상은 교육자가 되는것이였으며 그가 보람으로 생각한것은 학구적탐구로 교육계와 사회과학계에 기여하는것이였다.

     진취성이 강하고 명석한 두뇌를 소유한 그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법률학론문을 집필하여 학사학위를 수여받았다. 그는 희망대로 파트나종합대학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그후 교수, 박사가 되였고 교권과 실력이 인정되여 정치학부 학부장을 거쳐 부총장으로 되였다. 교육자로서의 그의 사회적권위가 얼마나 높았는가 하는것은 그가 여러 종합대학들에서 부총장을 력임하면서 명예순회교수로 활동하였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그만큼 무케르지는 철학과 정치학, 법률학 등 다과목을 전공하는 유능한 교수로 알려졌다.

     그는 미국, 영국, 일본을 비롯한 20여개 나라들을 돌면서 강의도 하고 학술토론회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하여 그의 동료들과 벗들은 그를 보고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하군 하였다.

     그러나 그는 교육자라고 자부하기에는 늘 그 무엇인가 해놓지 못한것이 있는것 같은 허전한감, 세계를 편답하는 학자라고 자처하기에는 현대인이 꼭 알아야 할 세계적인 사상을 외면하고있는것 같은 아쉬운감을 은연중 느끼게 되였다. 아마도 그것은 현실과는 불일치하거나 현실적인 문제들에 해답을 주지 못하는 사조들에 대하여 자기딴의 감정에 사로잡혀 열변을 토하는 허무감에서 오는것인지도 몰랐다.

     이즈음 일본과 가이아나, 파키스탄 등은 물론 자기 조국 인디아에서 주체사상토론회가 진행되고 주체사상연구소조가 결성되여 활동하는 소식들이 련이어 들려왔다. 뉴델리에서 열린 주체사상토론회소식들을 들어보면 유명한 박사, 교수들이 참가하여 뜻깊은 연설들을 하는것이였다. 그는 여기에 관심을 돌리지 않을수 없었다.

     주체사상열풍은 인디아의 동부지구인 비하르주에도 불어왔다.

     1978년 파트나시에서 열린 주체사상에 관한 인디아동부지구토론회에 참가하여 무케르지가 느낀것은 주체사상이 인류사상사에 있어본적이 없는 독창적인 내용을 담고있다는것이며 또 그를 신봉하는 인디아사람들의 열도가 매우 높다는것이였다.

     무케르지는 주체사상에 대하여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주체사상은 새로운 원리들로 심취되게 하는것이였다.

     지금까지 인류는 수많은 철학사상을 내놓았고 또한 그것들은 모두 인류리상사회의 실현을 표방해나섰지만 그 어느것하나 력사발전을 추동하는 결정적요인을 밝혀내지는 못하지 않았는가?

     바로 그것이였다. 무케르지는 자기가 선행고전가들의 철학을 신봉하면서도 불만을 느끼고 날이 갈수록 깊은 모순속에서 헤여날수 없었던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력사상 처음으로 사람을 위주로 하여 철학의 근본문제를 제기하고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세계에 대한 견해, 세계에 대한 관점과 립장을 밝힌 철학, 력사발전이 자연사적과정이 아니라 력사의 주체로 된 인민대중의 목적의식적인 활동에 의하여 힘있게 추동된다는 사람중심의 사회력사관을 밝힌 철학…

     이것은 독창적이다. 정녕 이것은 주체사상이야말로 현시대 인류가 반드시 신봉해야 할 유일한 철학적세계관이 아닌가!

     무케르지는 비로소 오랜 세월 찾아헤매던 인생의 진리를 깨닫는듯 싶었다.

     무케르지는 주체사상탐구에로 내디딘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전진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래서 1979년 인디아의 수도 뉴델리에서 열린 주체사상국제토론회에 참가하여 연설까지 하였다.

    물론 그는 파트나토론회때부터 뉴델리국제토론회에 이르는 기간에 주체사상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기 위하여 남모르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리하여 그는 국제토론회에서 연설할수 있을 정도로 주체사상의 원리를 체득하였던것이다.

    그는 자기 연설의 서두를 오늘은 지식을 얻는 날이라는 소박하면서도 청중의 시선을 끄는 말로 하였다. 그 말에는 주체사상에 접함으로써 비로소 참된 현대철학사상을 알게 되였다는 그의 속대사가 담겨져있었다. 그것은 또한 주체철학을 알게 되고 그를 창시하신 김일성주석의 위대성에 대하여 알게 됨으로서 자기의 번민을 씻어버리고 참된 교육자, 참된 학자로서 새 출발을 할수 있게 되였다는 의미심장한 말이기도 하였다.

    그는 연설에서 주체사상이 밝힌 인간의 본질적특성에 관한 사상과 정치에서 자주, 경제에서 자립에 관한 사상, 사대주의 극복문제 등에 대하여 절절하게 토론하였으며 이 위대한 사상을 창시하신 김일성주석은 위대한 사상가, 위대한 철학가이시라고 소리높이 칭송하였다. 그의 토론은 참가자들을 크게 공감시켰다. 그의 토론에 대한 참가자들의 열렬한 박수는 무케르지로 하여금 주체사상을 현시대의 기본추세를 이루는 위대한 사상으로 관심하고 깊이 연구한 자기의 판단과 행동이 옳다는 확신을 가지게 하였다. 그는 이때를 계기로 현행사조들에 대한 자기의 견해를 전면적으로 돌이켜보고 주체사상만이 가장 위대한 사상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는 후에 자기의 회상록에 이렇게 썼다.

     《나는 그때 주체사상을 학습하면서 종래의 학문과 구별되는 새로운 점들을 찾아보았다.

     그것은 사회발전의 모든 법칙과 요인들을 사람을 중심에 놓고 쓴것이였다.

     종래의 유물사관에서는 물질일반을 놓고 사회력사발전을 론의했다면 주체철학에서는 사람이라는 현실적인 존재를 놓고 모든 법칙들과 요인들을 규정하였다. 이것은 매우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리론이였다. ...

     사람이 모든것의 주인이고 모든것을 결정한다는 주체사상의 철학적원리에 나는 처음부터 공감하였고 그 리론을 따라야겠다는 결심을 새롭게 다지였다.》

     무케르지는 인디아전역에 주체의 불씨를 심어나가기 위한 투쟁을 더욱 정력적으로 벌리기 시작하였다. 그의 눈부신 활동은 인디아만이 아니라 멀리 주변나라들에까지 확대되였다.

     무케르지는 자기 조국 인디아에 대한 열렬한 사랑의 감정을 소유한 랑만적이며 애국적인 인사였다.

     어머니조국의 아들된 본분을 다하려면 조국을 빛내여야 하고 조국을 빛내이는 애국의 길을 걸으려면 주체사상을 신봉해야 한다는것, 이것이 무케르지의 새로운 관점이였다.

     그가 주체사상국제토론회연단에서 《만약 우리가 주체사상을 따르고 우리 경제의 자립에 중요성을 부여했더라면 우리는 훨씬 더 빨리 경제적자립을 이룩할수 있었을것입니다.》라고 주장한것도 결국 인디아에 대한 사랑과 주체사상에 대한 신봉을 하나로 련결시킨 그의 관점으로부터 우러나온것이였다.

     1980년 9월 7일 아시아지역 주체사상연구소가 창립되고 무케르지가 연구소 리사장 겸 소장으로 선출되였다. 연구소의 지도기관은 리사회였는데 리사들로서는 지역의 각 나라에서 1명씩 선출되였다.

     그때 그는 삶의 보금자리를 폈던 비하르주에서 뉴델리로 완전히 집을 옮겨왔으며 전임 아시아지역 주체사상연구소 소장으로서의 자기 직무를 수행해나갔다.

     무케르지는 조선을 방문할 때마다 자기의 사상정신적재부가 늘어난다고 말하군 하였다. 그는 조선을 방문할 때면 먼저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옵기를 소원했으며 그러한 소망이 실현된 자리에서는 언제나 초학도의 자세로 수령님께 주체사상에 대하여 질문을 하군 하였다. 그는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주체사상을 자기의것으로 만들어나갔으며 모든것을 주체사상의 원리대로 사고하고 판단할수 있는 두뇌를 소유할수 있게 되였다. 1980년 10월 력사적인 조선로동당 제6차대회가 열리는 날 무케르지와 그의 부인 로밀라는 대회에 초대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대회의 높은 연단에서 력사적인 보고를 하시는 전기간 무케르지는 보고의 구절구절을 한자라도 놓칠세라 쓰고 또 쓰며 귀담아들었다.

     그는 감격과 흥분을 억제할수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새 사회건설에 떨쳐나선 세계의 모든 진보적인류가 반드시 지침으로 삼아야 할 백과전서이다!

     무케르지는 대회가 진행되는 기간 도저히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모든것이 명백해지고 나아갈 앞길이 더욱 뚜렷해지자 그는 하루빨리 조국으로 돌아가 수천수만의 사람들에게 이 위대한 진리를 알려주고싶었다.

     무케르지가 돌아갈 차비를 서두르고있던 어느날이였다.

     한 일군이 그를 찾아와 위대한 수령님께서 부르신다는것을 전달해주었다.

     무케르지는 못 박힌듯 서버렸다.

     영광의 대회에 초대되여 위대한 수령님의 보고를 직접 들으며 가르치심을 받은것만 해도 더없는 영광인데 어버이수령님께서 별로 한 일도 없는 자기를 또다시 몸가까이 불러주신다니 정말 꿈만같은 일이였다.

     무케르지와 로밀라가 흥분으로 높뛰는 가슴을 가까스로 진정하며 그이께서 계시는 청사로 달려갔을 때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을 반갑게 맞아주시고 아시아지역 주체사상연구소를 내온데 대하여 축하해주시면서 아시아나라 인민들이 주체를 확립해야 할 필요성과 아시아지역 주체사상연구소앞에 나서는 과업에 대하여 과학적으로 분석하시고 주체사상을 구현하여 혁명과 건설에서 이룩한 조선의 성과와 경험을 가지고 주체사상의 근본원리들을 알기 쉽게 해설해주시였다.

     그날 밤, 그들의 숙소에서는 밤이 깊도록 불이 꺼질줄 몰랐다.무케르지와 로밀라가 오선지우에 노래를 작곡하고있었다. 

        

        조선에 솟아오른 주체의 태양 

        5대륙 그 어디나 밝게 비친다

        ... 

     그들이 목메여 부른 노래,그것은 주체사상의 위대한 승리에 대한 인류의 확신을 온 세상에 소리높이 구가한것이였다. 

    무케르지는 사람들앞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체사상이야말로 인간의 가치와 존엄을 빛내여주는 사상이요. 주체가 없이는 절대로 인류가 살수 없소. 주체의 기치를 높이 들고 나갈 때 인류해방의 새봄은 반드시 오게 되오.》

     이것은 인간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참된 길을 찾아 60평생을 살아온 로박사의 근엄한 인생총화의 귀결이기도 하였다. 하기에 그후 그가 쓴 도서 《주체의 인생관》과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사회경제 및 정치사상》은 그의 이러한 인생총화의 체험이 깃든것으로 하여 독자들의 인기를 끌었다.

     무케르지는 참다운 인생을 안겨주시고 인류가 나아갈 앞길을 환히 밝혀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스승으로 끝없이 흠모하며 주체사상연구와 보급에 자기의 모든것을 다바친 참다운 주체사상신봉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