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라틴아메리카주체사상연구소 집행위원장 호쎄 프란씨스꼬 아길라르 불가렐리에 대한 이야기-


    

    아길라르는 1932년 5월 꼬스따리까의 알라후엘라시에서 태여났다.

    그가 철들면서부터 느낀것은 땅은 꼬스따리까땅이지만 미제가 그 땅에서 주인행세를 하는 모순된 현실이였다.

    산림자원이 풍부하고 금, 은, 철, 원유를 비롯한 지하자원이 많아 《부유한 해안》이라 불리우는 꼬스따리까에 눈독을 들인 미제는 20세기초부터 이 나라에 대한 침투를 강화하여 정치, 경제 등 모든 분야의 명맥을 거머쥐였던것이다.

    하여 무권리와 빈궁만이 꼬스따리까인민에게 강요되고있었다.

    남달리 정의감이 강한 그는 이 모순된 현실을 결코 외면할수가 없었다.

    (겨레의 고통과 불행을 가시는데서 시대의 선각자가 되리라.)

    이 신념은 그로 하여금 대학을 졸업한 후 곧 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하였다.

    아길라르는 한건한건의 기사에 모순된 사회현실에 대한 자기의 울분을 담았고 인민에 대한 동정을 담았다.

    근로하는 사람들, 지식인들과 학생들의 리익을 대변하는 신문《임빡또》의 주필이 되면서 그의 활동은 더욱 맹렬해갔다. 그러나 그의 피맺힌 절규와 간절한 호소에는 아랑곳없이 인민이 겪는 고통과 불행은 가셔지지 않았다.

    (과연 인민이 당하는 수난의 력사에 종지부를 찍을수 없단말인가.)

    안타까움에 재가 앉는듯한 가슴을 쥐여뜯으며 몸부림치군 하던 아길라르는 두터운 책의 갈피를 뒤지며 선행고전가들의 주의주장과 리론에 밑줄을 그어보기도 했고 라틴아메리카에서 맨 처음으로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되찾았다는 나라의 경험을 놓고 연구해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자기 나라의 구체적현실을 놓고 그 리론, 그 경험을 따져보느라면 입에서 새여나오는 긴 한숨소리를 누를수 없었다.

    그러던 그는 1969년 9월 평양에서 열린 반미세계기자대회에 참가하여 새로운 현실을 목격하게 되였다.

    평양에서 그는 보는것마다 황홀경이요, 듣는것마다 기적같은 현실앞에서 단순히 흥분이라고만 표현할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혔다.

    조선의 현실은 그대로 인간이 어떻게 존중되고있으며 인민들에게 어떻게 평등한 권리가 보장되고 인간의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이 얼마나 높이 발휘되고있는가를 뜨겁게 말해주는 생동한 화폭이였다.

    과연 이 황홀경의 비결은 어디에 있는가?

    아길라르가 만난 사람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를 받고 수령님께서 창시하신 주체사상의 기치따라 나아가기때문입니다.》

    위대한 수령님! 주체사상!

    한없이 숭엄하게 울리는 그 말을 심장에 새기고 또 새기며 아길라르는 위대한 수령님의 불후의 고전적로작들을 탐독하기 시작하였다.

    (정녕 주체사상이야말로 온 인류가 따라배우고 신봉해야 할 위대한 학설이 아닌가.

    아, 내가 왜 이제야 이 위대한 사상에 접하게 되였는가.)

    아길라르의 흥분은 반미세계기자대회주석단에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러뵈옵고 수령님의 강령적연설을 접하게 되자 더욱 커졌다.

    (정녕 위대한 수령님은 인류의 태양이시다.

    주체사상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길에서만이 인간은 참된 삶을 누릴수 있다.)

    그날 아길라르는 일기책을 펼치고 이렇게 썼다.

    《태양의 빛발을 보지 못하고 산 삶이 무슨 삶이겠는가. 나는 지금껏 헛살았다. 나는 조선에 와서야 비로소 위대한 태양을 우러러보았고 태양의 빛발을 받아안았다.》

    그후 아길라르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주체사상을 선전하기 위하여 할수 있는 모든 일을 다했다.

    아길라르가 《아메리카 라티나》방송에 일주일에 두번씩 《오늘의 조선》을 소개하는 방송프로를 넣도록 조직하였을 때였다.

    조선에 대한 방송프로를 늘여달라는 부탁의 편지가 하루에도 수백통씩 방송국과 아길라르의 집으로 날아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직접 찾아와 조선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것을 요구하였다.

    그럴 때면 아길라르는 이렇게 말하였다.

    《벗들,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주체사상은 인류의 광명한 미래를 밝히는 등대요. 나는 일생토록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주체사상을 구현하기 위하여 투쟁하기로 결심했소. 벗들도 주체사상을 배우고 주체사상이 가리키는 한길만을 걷기 바라오.》

    아길라르는 매일같이 수십, 수백명의 사람들을 만나고 방송편집을 조직하는 긴장한 속에서도 《조선은 승리의 길》을 비롯한 수많은 책들을 썼으며 그것을 《아메리카 라티나》방송국과 꼬스따리까방송국, 그리고 여러 출판사와 신문사들에 투고하여 사람들을 주체의 길, 자주의 한길로 힘있게 불러일으켰다.

    그 당시 주체사상을 연구하고 주체의 길을 따라 나아가려는 지향은 어느 몇개 지역이나 어느 한 나라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였다.

    대륙적인 주체사상보급 및 선전거점이 필요하게 되였다. 그 실현을 위하여 누구보다 팔을 걷고 나선것이 바로 아길라르였다.

    아길라르는 대륙적인 주체사상연구소창설문제를 발기하고 체까, 마리오 등 주체사상신봉자들과 함께 1978년 2월 17일에 꼬스따리까의 수도 싼호쎄에 라틴아메리카주체사상연구소를 창설하였으며 이 연구소의 집행위원회 위원장으로 되였다.

    이때부터 아길라르는 라틴아메리카에 주체의 불씨를 심어나가기 위한 투쟁을 더욱 정력적으로 벌려나갔다.

    1980년 4월에 빠나마에서 진행될 주체사상에 관한 라틴아메리카 및 까리브지역과학토론회를 준비할 때였다.

    아길라르는 꼬스따리까에서 밤을 꼬박 새우며 글을 쓰고는 그길로 차를 몰아 빠나마로 달리였고 빠나마에서 일을 처리하고는 또다시 꼬스따리까에 돌아와 문건준비에 달라붙군 하면서 준비사업에 모든 정열을 다 바치였다.

    아길라르의 눈에는 종종 피가 졌고 얼굴은 몰라보게 수척해갔다. 동지들이 그를 념려해주면 그는 이렇게 말했다.

    《… 지금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존함이 아로새겨진 금시계의 고르로운 초침소리가 나의 심장의 박동에 활력을 보태주고있습니다.

    열밤, 백밤도 끄떡없습니다. 설사 이 길에서 쓰러진다 한들 무슨 여한이 있겠습니까.》

    정녕 아길라르는 그 신념, 그 의지를 안고 싸워나갔다.

    뜨거운 열정속에 토론회준비가 성과적으로 마무리되여가던 4월초의 어느날 아길라르는 토론회장으로 선정되여있는 빠나마종합대학강당에서 미제의 부추김을 받는 괴한들이 위협해나섰을 때 놈들을 쏘아보며 《지금 주체사상을 따라배우는것은 세계적추세이며 국제적판도에서 벌어지고있는 주체사상신봉자들의 장엄한 투쟁을 막을 힘은 이 세상에 없다.》라고 당당히 선언하였다.

    주체사상에 관한 라틴아메리카 및 까리브지역과학토론회를 성과적으로 끝마친 아길라르는 벗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의 사업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우리의 앞길에는 의연히 가시덤불도 있고 사나운 파도도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그 무엇도 주체의 해발따라 나아가는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지 못합니다.

    위대한 김일성주의기치따라 더욱 힘차게, 더욱 억세게 싸워나갑시다.》

    아길라르의 정력적인 활동은 결코 라틴아메리카지역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는 주체사상에 관한 수많은 국제토론회 조직위원회의 성원으로, 문건작성위원회 성원으로 활동하면서 토론회의 성과적보장을 위하여 심혈을 기울이였다.

    1982년 4월의 봄명절을 앞두고 아길라르는 실로 정력적인 활동을 벌려나갔다.

    아길라르는 주체사상에 관한 전국토론회와 소조토론회들을 련이어 조직했고 위대한 수령님의 고전적로작들에 대한 번역출판사업을 완강하게 밀고나갔다.

    위대한 수령님의 영광찬란한 혁명력사와 혁명과 건설에서 조선인민이 거둔 성과에 대한 기념강연회, 기념보고회, 영화감상회, 사진전람회 등을 조직하느라 몇날 몇밤씩 밝히기도 했고 위대한 수령님께 올릴 편지와 선물들을 마련하기 위하여 하루에도 몇백리씩 달리였다.

    그런속에서도 아길라르자신이 가장 뜨거운 마음으로 마련하는 선물이 있었으니 그것은 위대한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의 위대성, 령도의 현명성, 고매한 덕성에 대하여 소개하는 책 《조선의 태양》이였다.

    아길라르는 자기의 책상우에 정교한 글씨로 《인류의 태양 김일성주석의 일흔번째 봄이 다가온다!》라고 쓴 종이를 첫눈에 띄울수 있게 세워놓았다.

    그 당시 건강상태가 좋지못하였지만 아길라르는 밤늦게까지 집필을 하군하였다. 남편의 건강문제가 걱정되여 안해가 자주 서재에 들어와 걱정어린 눈길로 그를 지켜보자 어느날 그는 안해의 손목을 끌어 곁에 앉히고 심중한 어조로 말을 하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은 정말 위인중의 위인이시고 어버이이시오.

    나는 <조선의 별>영화를 보면서 몇번이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르겠소. 조선의 청년공산주의자 김혁은 원쑤들과 맞다든 최후의 순간에 <조선의 태양 김일성! 김일성!》라고 웨치며 고층건물 로대에서 몸을 던져 장렬한 최후를 마치였소.

    위대한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길에서 나도 김혁이처럼 살겠다고 맹세했는데 아직 그렇게 살자면 멀었소.》

    그리고는 또다시 펜을 잡는 아길라르였다.

    책 《조선의 태양》에 대한 집필사업이 끝나는 날 아길라르는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화앞에 삼가 옷깃을 여미고 서서 보고를 드리였다.

    《위대한 주석님, 저의 심장의 글발로 엮어진 책 <조선의 태양>을 안고 주석님의 일흔번째 봄을 축하하러 가겠습니다.》

    1982년 4월.

    위대한 수령님께 축원의 인사를 올리는 수많은 외국의 벗들중에는 아길라르도 섞여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 주체사상신봉자들과 온 가족의 가장 뜨거운 마음을 담아 삼가 축원의 인사를 올린 아길라르는 그동안 라틴아메리카주체사상연구소가 진행한 사업과 성과에 대하여 보고드리였다.

    그의 보고를 주의깊게 들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것은 참 좋은 일이라고 분에 넘치는 치하도 해주시고 또 호탕하게 웃으시며 만족을 표시해주시였다.

    그날의 영광을 안고 아길라르는 더욱 분발하여 지구의 곳곳을 돌면서 김일성주의를 연구보급하면서 주체의 한길만을 꿋꿋이 걸어왔다.

    그때로부터 세월은 흘러 30여년.

    어느덧 80고령에 이른 아길라르는 오늘도 쉬지 않고 그날의 영광속에 살며 서재에서 집필활동을 벌려나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