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최고사령관의 활동방식은 변화무쌍이다》 ‐ 남조선 인터네트신문 《자주민보》에 실린 글중에서 ‐

    인터네트를 통해 김정은최고사령관께서 판문점을 시찰하신 소식에 접하였다.

    문제로 되는것은 김정은최고사령관께서 많은 간부들과 함께 판문점을 다녀가시였는데 남쪽은 뭘하고있었는가, 왜 몰랐는가라는 질문이 나오게 된다.

    1996년 11월 24일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 판문점시찰을 단행하셨을 때에도 처음에는 그것이 진실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였으나 국방위원장께서 판문점에 세워진 김일성주석의 친필비앞에서 찍으신 사진이 유력한 증거로 되여 의문은 쑥 들어가버렸다.

    대신 나온 질문이 왜 몰랐느냐이다.

    그때 미군도 남조선군도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는데 구차하지만 변명구실은 있었다. 그날따라 짙게 낀 안개였다.

    또한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 새벽에 판문점에 가시였으므로 이동과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는 등의 해석도 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김정은최고사령관께서 분명 환한 대낮에 판문각 로대에서 쌍안경으로 남쪽을 바라보시는 사진을 남기시였다. 그것도 장령들과 판문점 경위병들과 함께 찍으신것이다.

    이에 대해 《로동신문》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키 리졸브》, 《독수리》합동군사연습을 감행한 적들과의 첨예한 대결로 흐르는 공기마저도 팽팽한 최전방의 판문각 로대에 오르시여 적정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시였다고 전하였다.

    북이 판문각을 보수할 때도 남조선언론들이 왜 보수하는지 모르겠다고 시시콜콜히 떠들며 수많은 사진들까지 내놓았다. 그만큼 판문각은 남쪽에서 항시적으로 감시하는 대상이고 자그마한 변화도 화제거리로 된다.

    그런데 이번에 군사분계선 남쪽(여기에는 남조선군만이 아니라 미군도 포함된다.)에서는 북쪽에서 공개할 때까지 사진 한장 내놓지 못했고 엇비슷한 추측도 못했다.

    군사분계선 남쪽에는 높다고 자랑하는 기발대도 있고 높은 곳도 있다고 한다. 그런 물체나 장소들이 군사적으로 감시에 리용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겠는가.

    하지만 김정은최고사령관께서 판문점에서 상당히 긴 시간 그것도 야외에서 활동하고 떠나셨는데 이를 알지 못했고 사진도 찍지 못했다는것이 말이 되는가. 게다가 지금은 군사연습기간이라 분계선 남쪽이 바짝 긴장할 때가 아닌가.

    미국이 신물이 날 지경으로 자랑하고 남조선군이 철석같이 믿는 정찰위성, 전자정찰기들은 다 뭘했단 말인가. 시찰이 어느날 진행되였는지 이번 공개는 분명 미국이 주도하는 군사연습을 겨냥한 반격이다.

    《너희들이 아무리 날뛰여도 우리의 움직임을 전혀 모르고 어째볼수는 없다.》는 강력한 배짱이였다. 조선을 여러번 연구해본 필자는 북의 령도자들의 품격을 비교해본적이 있다.

    김일성주석님께서 1968년 2월 8일 《푸에블로》호사건을 두고하신 선언이 가장 유명한데 그것이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이다. 여기서 골자는 《강경에는 강경으로》이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대응방식은 《적들이 총을 내대면 우리는 대포를 내대고 적들이 칼을 빼들면 우리는 장검을 휘두른다.》는것이다.

    이것이 바로 조선이 강조해온 《강경에는 초강경으로》이다.

    김정은최고사령관의 방식에 대해서는 필자가 볼 때 《강경자체를 물거품으로 만들기》라면 비슷하지 않겠는가 한다.…

    김정은최고사령관께서 조선의 국력과 군력, 민심에 기초하여 현란한 무기들을 보여주시는데 분석하면 그 특징이 변화무쌍이다.

    변화무쌍이란 변수가 많다는 말이다. 변수가 많을수록 답을 얻기가 난문제중의 난문제이다.

    김정은최고사령관의 판문점시찰을 두고 담력과시니 뭐니 하고 분석하는 이른바 남측의 전문가들은 산수문제도 잘 풀지 못할 수준이니 이에 대해 도저히 리해하지 못한다.

    굉장한 정치적지혜와 종합적인 사고능력을 가진 사람들만이 어느정도 짐작할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