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의 농업협동화

조선에서 수천년동안 존속되여온 사적소유의 개인경리를 사회적소유에 기초한 집단경리로 바꾸어야 하는 농업협동화운동은 처음부터 난관에 부닥쳤다.
당시 사람들은 농업협동화는 반드시 공업화를 한 기초우에서만 할수 있는것으로 알고있었다.
기술개조냐, 경리형태의 개조냐, 이것이 주되는 론점이였다.
이 문제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독창적이면서도 명철한 해답을 주시였다.
그이께서는 농촌경리는 비록 현대적기술로 장비되여있지 않다 하더라도 협동화가 농민들자신의 생활적요구로 나서고 그것을 맡아할만 한 혁명력량이 준비되여있다면 경리형태를 개조해야 한다고, 부농과 중농이 거의다 파산되였고 농민들이 서로 힘을 합치지 않고서는 농사를 지을수 없는 절박한 처지에 놓인 이때가 바로 협동화의 가장 적당한 시기이라고 교시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주체인 농민대중을 중심에 놓고 협동화의 단계와 협동경리의 형태 및 규모를 명철하게 규정해주시였으며 자원성의 원칙을 견지하고 정확한 계급정책을 실시하도록 하시였다.
갓 조직된 협동조합들에 대한 물질기술적 및 재정적지원을 강화하여 그 우월성이 실물로 나타나도록 정력적으로 이끄신 그이의 현명한 령도밑에 농업협동화는 전후 4~5년동안에 성과적으로 완성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