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산지구전투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지휘밑에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주체28(1939)년 5월에 무산지구에서 벌린 전투이다.
주체28(1939)년 당시 일제의 책동으로 하여 서간도지방의 혁명조직들과 함께 국내북부일대의 여러 혁명조직들은 큰 피해를 입었으며 피해를 면한 혁명조직들도 위축상태에 있었다. 게다가 적들은 조선인민혁명군이 다 망했다는 허위선전을 계속하고있었다.
이러한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8(1939)년 4월초 장백현 북대정자에서 조선인민혁명군 간부회의를 소집하시고 적극적인 반격전으로 일제침략자들을 련속 타격하고 조국으로 진군할데 대한 새로운 투쟁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후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친솔하시고 적극적인 춘기반격전으로 넘어가 령활무쌍한 유격전법과 탁월한 령군술로 여러 전투들을 승리적으로 이끄시여 적들에게 련속적인 타격을 주고 조국진출준비를 빈틈없이 갖추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8(1939)년 5월 18일 5호물동으로 압록강을 건너 조국땅에 진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력사적인 북대정자회의에서 제시하신 무산지구작전방침에 따라 조국에 진출한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일제침략자들이 《국경경비》를 강화하기 위하여 갑산-무산사이에 건설한 국경경비도로인 《갑무경비도로》를 따라 행군하여 주체28(1939)년 5월 21일 량강도 삼지연군 무포(당시 함경북도 무산군)에 이르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곳에서 조선인민혁명군 지휘관회의를 여시고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대홍단지구로 진격할데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우선 신사동과 신개척 두 방향으로 진출할데 대한 전투적과업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5월 22일 대홍단 국사당부근에 이르시여 잠시 휴식하신 다음 이미 세우신 작전계획대로 조선인민혁명군 제7련대를 신개척방향으로 떠나보내시고 제8련대와 경위중대를 친솔하시고 신사동으로 향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신사동에 진출하시여 인민들앞에서 《조국의 광복을 앞당기기 위하여 반일투쟁에 적극 떨쳐나서자》라는 연설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설에서 전민족이 반일전선에 굳게 결속되여야 한다고 호소하시고 앞으로의 투쟁방향과 과업을 밝혀주시였다.
신개척일대로 진출한 제7련대는 이 일대의 적을 소멸하고 수많은 군수물자를 로획하였으며 인민들속에서 정치사업을 진행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친솔밑에 신사동일대에 진출하여 정치군사적목적을 달성한 제8련대와 경위중대는 5월 23일 새벽 집결장소인 국사당부근에 이르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들이 반드시 추격해오리라는것을 예견하시고 대홍단벌의 유리한 지형에 부대를 매복시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지휘밑에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이날 대홍단벌에서 제7련대의 뒤를 추격해오던 일제침략자들에 대한 대섬멸전을 벌려 빛나는 승리를 이룩하였다.
대홍단전투에서 승리한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두만강방향으로 이동하던 도중 하삼수평부근에서 전투를 벌려 적들을 또다시 타격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지휘에 의하여 이룩된 무산지구전투의 승리는 조선인민혁명군의 백전백승의 위력을 시위하고 국내인민들에게 혁명승리에 대한 필승의 신심과 투쟁열의를 북돋아주었으며 일제침략자들에게 심대한 정치군사적타격을 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직지휘하신 무산지구전투는 보천보전투와 함께 조선인민혁명군이 국내에서 진행한 군사작전들가운데서 가장 규모가 크고 의의가 큰 전투였다.
조선에서는 무산지구전투를 승리에로 이끄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을 길이 전하기 위하여 대홍단등판에 주체60(1971)년 5월에 《무산지구전투승리기념탑》을 세웠다.
이 탑은 주체91(2002)년 5월 23일 시대의 요구에 맞게 새롭고 독특하게 건립되였다.
무산지구전투가 있은 때로부터 기나긴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직령도하시여 빛나는 승리를 이룩하신 무산지구전투는 오늘도 강성부흥의 새 시대를 열어나가기 위하여 투쟁하는 우리 군대와 인민에게 커다란 혁명적신념과 락관을 안겨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