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66(1977)년 4월 3일 이른새벽이였다.
전화를 받는 일군은 가슴이 뜨거웠다.
(이 새벽에 벌써 집무를 …)
전화기에서는 청봉숙영지에 있는 구호나무들에 쓴 구호들가운데 잘 보이지 않는 글자가 있는데 잘 보이지 않는 글자를 찾아내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청봉숙영지에서 항일혁명의 귀중한 력사자료인 구호나무들이 발굴된것은 오래전이였다. 그러나 나무의 적지 않은 글자들이 세월의 눈비속에서 색이 바래져 내용을 알아볼수 없게 되였다. 그런데 그때까지만 해도 사라진 글자들을 원상그대로 현출하는 방법을 모르고있었다.
어떻게 하면 혁명적구호문헌들을 다시 찾아낼수 있을가.
이런 안타까움을 안으시고
일군은 혁명사적발굴과 보존을 본분으로 하는 부문의 책임일군으로서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죄송스러움을 금할수 없었다.
장군님께서는 이윽하여 청봉의 구호나무는 그 하나하나가 다 천만금과도 바꿀수 없는 나라의 국보이며 혁명의 귀중한 재보이라고, 천고의 밀림속에서 오랜 세월 눈비에 씻기여 지워진 구호나무의 글자를 찾아낸다는것이 간단한 문제는 아니지만 어떻게 하나 그것을 찾아내기 위한 연구사업을 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런 간곡한 교시를 주시였다.
최근 일부 나라들에서는 양피지나 종이에 잉크로 쓴 글자가 지워져 보이지 않는것을 찾아낸다고 하는데 항일무장투쟁시기에 나무에 쓴 구호들은 먹으로 썼기때문에 잉크와는 다르겠지만 잉크로 쓴 글자가 보이지 않는것을 찾아내는 방법이 있다면 먹으로 썼던 글자가 없어진것을 찾아내는 방법도 있을것이다, 과학자들에게 과업을 주어 구호나무에서 지워진 글자를 찾아내기 위한 연구사업을 적극 벌리도록 하여야 하겠다. …
우리 혁명의 재보인 구호나무의 글발을 기어이 다 찾아내여 자손만대에 빛을 뿌리게 하시려는 장군님의 숭고한 뜻을 심장에 새기고 국가과학원 함흥분원의 과학자들은 그후 4년간에 걸치는 고심어린 연구끝에 형광투광방법으로 청봉의 7그루의 구호나무에서 이미 지워져 보이지 않던 34자의 글자를 끝내 되살려내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그 연구성과를 보다 심화시켜 백두산기슭으로부터 분계연선에 이르는 나라의 방방곡곡에서 《만고의 령장 김대장 만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