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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34(1945)년 9월 어느날 평양에 입성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당시 서기산이라고 불리우던 산기슭 남쪽에 있는 자그마한 2층벽돌집에 숙소를 정하시였다.

    정갈히 널판자로 울타리를 두른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허리에 손을 얹으시고 감명깊게 집둘레를 둘러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집무실 겸 침실로 쓰실 방을 둘러보시고 전투가방과 모자를 벽에 붙어있는 옷걸개에 거시였다.

    사령부성원들은 20여성상 항일의 혈전만리를 헤쳐오신 위대한 수령님께 집무실과 저택을 따로 마련해드리지 못하고 수수한 집의 2층방에 침실 겸 집무실을 마련해드린것이 마음에 걸려 송구스러움을 금치 못해했다.

    원래 평안남도당에서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자고 준비한 집은 동평양지구의 조용한 곳에 호화롭게 꾸려진 건물이였는데 방들이 많고 널직해서 위대한 수령님을 보좌하는 여러 사람이 쓰는데 아주 편리할것 같았다.

    그래서 사령부성원들이 위대한 수령님께 보고드리였는데 그이께서는 대번에 마다하시면서 사령부성원들이 합숙방으로 어우러져 자며 일을 할수 있을 정도의 수수하고 아담한 집이면 된다고, 인민들이 살고있는 시내복판에 위치하고있는 집이면 좋겠다고 이르시였다.

    그리하여 서기산기슭에 자리잡고있는 이 집을 정하게 되였으며 위대한 수령님께서도 만족해하시였던것이다.

    사령부를 찾아오는 정치공작원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해방된 조국에서 첫번째로 자리를 정하고 일을 보시는 집이라는 의미심장한 뜻을 담아 항일유격대식암호명칭으로 《1호집》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때부터 항간에서는 조국해방을 안아온 조선인민혁명군 사령부가 자리잡고있는 서기산을 해방산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으며 평양사람들속에서도 잘 알려져있지 않았던 이 산이 일약 전민족의 마음이 쏠리는 유명한 산으로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