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씨야 원동지역
싸할린주지부소조 책임자 뜨리쉰
그이께서는 어린 시절부터 애국적이며 혁명적인 교양을 받으시였습니다.
그이의 증조할아버님이신 김응우선생님은 미국침략선 《셔먼》호를 격침시키는 싸움과 군함 《쉐난도아》호의 공격을 격퇴하기 위한 투쟁을 이끄시였습니다.
김보현할아버님과 리보익할머님께서는 자손들을 혁명의 길로 떠나보내시고 그분들의 혁명투쟁을 적극 도우시였으며 불굴의 혁명정신을 지니시고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항거해나서시였습니다.
아버님이신 김형직선생님은 조선의 반일민족해방운동의 지도자이시였고 조국의 독립과 인민의 해방과 자유를 위한 위업에 한생을 바치시였습니다. 그분께서는 지원의 사상을 한생의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일찌기 혁명의 길에 나서시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1917년 3월 23일에 반일지하혁명조직인 조선국민회를 결성하시였습니다. 조선국민회는 당시 조선의 애국자들이 국내외에서 결성한 모든 단체들가운데서 규모가 제일 큰 조직이였습니다. 이 조직은 반제자주적립장이 가장 투철하고 군중지반도 공고하였습니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1919년 3.1인민봉기후에 조성된 급변하는 정세의 요구에 맞게 조선인민의 반일민족해방운동을 민족주의운동으로부터 공산주의운동에로 방향을 전환하는데서 선구자의 역할을 수행하시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무장투쟁을 발기하시고 생애의 마지막날까지 무장대오들을 통합하며 반일애국력량의 통일을 이룩하기 위하여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이시였습니다.
어머님이신 강반석녀사는 조선녀성운동의 지도자이시였습니다. 녀사께서는 조선혁명의 승리와 녀성들의 사회적해방을 위하여 한생을 바치시였습니다. 녀사께서는 조선에서 녀성들의 첫 대중적혁명조직인 반일부녀회를 무으시고 나라의 독립과 녀성들의 사회적해방을 위한 적극적인 투쟁을 전개하시였습니다. 녀사께서는 생활상 어려움과 일본경찰의 박해가 계속되는 조건에서도 남편과 아드님의 혁명사업을 방조하기 위하여 모든것을 다하시였습니다.
외할아버님이신 강돈욱선생님과 외삼촌이신 강진석선생님도 조선의 진정한 반일애국투사였습니다.
《나는 어려서 부모님으로부터 애국주의교양과 혁명적영향을 받으며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에 그리고 불공평하고 모순에 찬 사회현상들을 직접 목격하는 과정에 학대받는 인민들을 동정하게 되고 그들을 억압하며 착취하는 제국주의자들과 지주, 자본가계급을 미워하게 되였으며 인민의 해방과 자유를 위하여 한생을 바쳐 싸우려는 굳은 결심을 가지게 되였습니다.》
그이께서는 어린시절부터 부모님들로부터 아름다운 조국강산과 5천년의 력사를 가진 조선민족의 지혜와 용감성, 봉건통치배들과 외래침략자들을 반대하여 싸운 인민들과 애국명장들의 위훈, 세계문화의 보물고에 기여한 자랑높은 민족문화, 조선을 강점한 일제의 야수적인 식민지통치와 조선사람들에 대한 민족적멸시, 지주와 자본가들의 악착한 착취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시였습니다. 이리하여 그이의 마음속에서는 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과 원쑤들에 대한 불타는 증오심이 싹트게 되였습니다.
이처럼